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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인터뷰

INTERVIEW

도자기로 한국의 민간신앙을 유럽에 알리다, 도예가 김지현 동문

  • 조회수 1047
  •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인터뷰자
  • 작성일 2024-01-24


  • 도예가 김지현 동문(공예과 16) 인터뷰


“불운을 쫓아내기 위해 입구 옆에 소금함을 두는 풍습에 대해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김지현 동문(공예과 16)은 학부생 때 처음 매력을 느낀 ‘흙’을 통해 한국의 다양한 풍습과 민간신앙을 유럽에 전하는 신진 도자기 작가다. 버섯과 한국의 민속신앙 등 다양한 토속적 습관을 작품에 담아 전 세계 관객을 마법의 경계, 신비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다. 국제적 권위의 영국 도자기 비엔날레에서 신예 도예가로 선정된 김지현 동문을 숙명통신원이 만났다.


영국 왕립예술학교 석사 졸업전시 

1.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숙명여자대학교에서 공예과(도자기·섬유)를 전공하고, 시각·영상디자인과를 복수전공 한 16학번 김지현입니다. 저는 영국 왕립예술학교(RCA·Royal College of Art)의 도자기 석사학위 과정(Master of Arts in Ceramics and Glass)을 최근에 졸업하고 현재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도자기 작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2. 도예가의 꿈을 가진 계기가 있나요?


숙명여대 공예과에 합격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흙이란 매체를 접했습니다. 부드럽고 연약한 흙 상태에서 시작해서 1200도가 넘는 고온을 통해 견고하고 아름다운 도자기의 모습으로 태어나는 과정이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상상을 제 손으로 직접 만든다는 것이 저에게 크나큰 예술적 해소와 기쁨으로 다가왔습니다. 


또, 흙을 통해서 조각뿐만 아니라 실생활에 사용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머릿속에 있거나 종이 위에 그려진 디자인을 직접 손으로 흙을 빚어 창조하는 도예가라는 꿈을 가졌습니다. 


3. 숙명여대 공예과는 도자뿐만 아니라 금속, 목칠, 섬유 등 다양한 세부 전공이 있는데, 왜 도예가로 진로를 선택했나요?

 

1학년 때 4가지 전공을 조금씩 맛보면서 각 재료를 조금씩 다룬 뒤, 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 재료 2가지를 중점적으로 배우고 졸업합니다. 그중 저는 섬유와 도자를 선택했는데, 섬유와 도자의 유연한 물질성이 제 디자인 스타일을 담아내기에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항상 ‘조각’과 ‘사용성’이란 개념의 중간을 찾고 싶던 저에게 도자기가 가장 재밌는 재료라고 느꼈습니다. 4학년 때 졸업 전시를 준비하면서 ‘도자’라는 재료를 깊이 공부해 작업을 더 발전시키고 싶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국제적인 도예가가 되기 위해 석사학위를 따러 영국으로 왔습니다.


Salty Fairy Ring (Exhibition photo), 2023 

4. 가장 기억에 남는 동문님의 작품을 소개해주세요.


석사 졸업작품이자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던 작품인 Salty Fairy Ring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온 저는 한국의 민간신앙에 깊은 영향을 받았는데요, 석사 논문을 위해 한국의 샤머니즘과 미신을 조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내용을 재미있게 해석해서 도자기로 재창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민간신앙을 믿는 한국 가정집이라면 불운을 쫓아내기 위해 늘 집에 두는 소금함을 유럽의 버섯 미신과 엮어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소금함을 두거나 대문 앞이나 장독 위에 새끼줄을 꼬아 두는 전통은 ‘우리 집’을 미지의 액운으로부터 지키는 보호구역(Sanctuary)으로 만들고자 하는 선조들의 마음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한국의 전통적인 마법적 경계라고 설명합니다. 


일상적인 물건에 조각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영국 등 유럽 관객이 일상생활에서 한국 전통적 마법의 경계를 마주하도록 초대하고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신비한 요소를 탐험하도록 했습니다.


5. 이 작품에 담긴 유럽의 버섯 미신은 무엇인가요?


유럽에는 버섯과 관련된 설화와 미신이 있는데요, 신기하게도 국가에 따라 버섯을 두려워하거나(Mycophobic), 버섯을 좋아하는(Mycophilic) 경향이 각각 있고, 그에 따라 이야기가 나뉩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버섯과 균류의 미지성(未知性)에 대한 경외심에서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버섯의 생태계와 생김새 그리고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서 시작한 미신은 유럽, 특히 버섯이 많이 피는 북유럽을 중심으로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유럽의 버섯 설화를 공부하며 저는 안전한 보호구역을 구축해 나가고자 미신을 만드는 풍습은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에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영국 왕립예술학교 석사 스튜디오 

6. 도예가는 무언가를 창작하는 직업이라 창의력이 아주 중요할 것 같아요. 작품의 영감을 어디서 얻는지, 창의력을 기르기 위해 하는 활동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 배경과 뿌리를 연구해 얻은 영감을 사용성과 조각성이 융합된 도자기로 풀어냅니다. 한국의 전통 신앙과 관련된 책을 읽고 신앙을 지닌 유물을 보러 박물관에 방문하고,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할머니의 신앙과 관련된 습관에서 영감을 얻기도 합니다. 이 영감을 기록하고 낙서와 스케치하는 과정을 거쳐 도자기 작업으로 발전시킵니다.


7. 작품을 만들면서 어떤 점을 가장 신경 쓰는지도 궁금해요.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신경 쓰는 것은 크래프트맨십(Craftsmanship·장인정신이나 뛰어난 솜씨 등을 의미함)’입니다. 저만의 도자기 테크닉을 연구하고 심화시켜 작품성을 견고하게 하는 것입니다. 석사 과정 동안 재료 연구를 통해 저의 유니크한 테크닉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도자기란 그저 흙으로 빚고 고온으로 구워내는 것이 아니라 유기물과 화학물의 결합을 통해 무궁무진한 표현을 할 수 있는 매체입니다. 원하는 결과물을 위해 특정한 온도에서 흙과 유리질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실험, 공부하고 작품으로 승화해내는 크래프트맨십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시간도 많이 할애하고 있습니다.


2023 영국 도자기 비엔날레(British Ceramic Biennial) 

8. 최근 영국 도자기 비엔날레(British Ceramic Biennial)에서 신예 도예가로 선정됐어요. 동문님 작품만의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요?

 

영국에서 도자기를 한다면 누구나 꿈꾸는 이 전시에서 신예 도예가로 선정된 것은 정말 크나큰 영광입니다. 제 작품의 선정 이유이자 특별한 점은 바로 흙이라는 개념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다는 점입니다. 


저는 석사 2년 동안 도자 화학 공부에 집중하면서 흙과 유리의 중간성을 탐험했습니다. 쉽게 말해 1200도가 넘는 고온에서 유리처럼 녹지만 흙처럼 견고한 형태를 지닌 물질을 연구해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냈는데, 그것은 바로 중력을 거스르는 형태의 도자기입니다. 흙과 유리의 중간선에 위치한 물질을 가마 안에서 녹여 서로 떨어져 있는 도자기 피스들을 하나의 몸으로 만드는 테크닉입니다. 이런 화학적 계산뿐만 아니라 디자인적 심미성 그리고 신비로운 이야기까지 담아낸 것이 제 작품의 특별한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케치, 2023 

9. 도예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도예의 매력이란 화학과 예술의 조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온에서 구워지고 수많은 화학반응을 일으켜 탄생하는 도자기는 표현 방법이 정말 많은데요, 이를 파악하기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한번 파악하면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습니다. 실험실에서 화학물을 계산해 섞고, 이를 가마에서 구워 꺼내면 마치 예술적 연금술사가 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10. 앞으로 도예가로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요?

 

저는 한국 민속신앙의 독특하고 재미있는 해석을 담은 도자기를 만드는 디자인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싶습니다. 


다룰 수 있는 토속적 습관의 범위를 늘려 작품에 다양성을 주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이고, 제 도자기를 통해 한국 민속신앙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을 국제 시장에도 알리고 싶습니다. 또, 아름다운 조각인 동시에 일상생활에 녹아드는 도자기 작품을 더 창조해 많은 관객에게 선보이고 싶습니다. 


취재: 숙명통신원 22기 송서현(프랑스언어·문화학과 22), 이시진(문화관광학전공 22)

정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