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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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인터뷰

INTERVIEW

창학 111주년 기획 인터뷰 시리즈 [르네상스 숙명, 길을 묻다] - ⑥ 르네상스 숙명 자문위원회

  • 조회수 5651
  •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인터뷰자
  • 작성일 2017-05-31



멘토라는 단어의 기원은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된다. 고대 그리스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전쟁에 출정하며 아들을 친구에게 부탁한다. 이 친구의 이름이 바로 멘토다. 멘토는 오디세우스가 전쟁에서 돌아올 때까지 10년간 왕자의 친구이자 스승, 때로는 상담자가 되어 그를 잘 돌보았다. 이 후로 멘토는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주는 지도자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강정애 총장에게 멘토라는 단어의 의미는 각별하다. 그는 경력개발처의 전신인 취업경력개발원의 원장을 맡으면서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멘토링 프로그램을 정식 교과목으로 개설했다. 특히 사회 저명인사가 참여하는 자문위원멘토프로그램은 이후 다른 대학에서 벤치마킹을 할 정도로 대학가의 화제가 됐다.

    

제자들을 위한 멘토를 찾던 그가 이번엔 자신을 위한 멘토를 꾸렸다. 총장에 취임한 직후 구성한 ‘르네상스 숙명 자문위원회’가 그것이다. 대외활동을 하며 인연을 맺은 각계각층의 전문가들로 출범한 자문위원회는 대학 운영 전반에 있어서 외부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한 이슈에 대해 자문하는 총장 직속 기구다. 그동안 1회성의 총장 자문단이 있었지만 공식조직으로 규정화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문위원회는 강정애 총장을 포함해 각계각층의 전문가 14인으로 구성됐으며 명단은 다음과 같다.(가나다순)

    

강정애(숙명여자대학교, 총장)

권인소(카이스트, 석좌교수)

김민주(리드앤리더, 대표이사)

김택동(알루코 그룹, 부회장)

류선종(N15, 공동대표)

류지성(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서진석(EY한영, 대표이사)

신빛나(디자인짜임, 공간디자인 실장)

이광석(인크루트, 대표이사)

이언구(대한기계설비산업연구원, 원장)

이우근(법무법인 충정, 대표)

이제호(서울시 바이오펀드, 운영위원장 / 르네상스 숙명 자문위원회 위원장)

주완(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최은화(제일특허법인, 공동대표)

    

이에 지난 4월 25일 교내에서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강정애 총장과 자문위원회 7명, 그리고 사회자로 이형진 대외협력처장이 함께 한 간담회에서는 우리대학의 역사와 현황, 숙명 브랜드 파워, 재정안정 방안 등 다양한 주제를 두고 폭넓은 의견이 오고갔다. 대화는 당초 예정시간인 2시간을 훌쩍 넘긴 밤 10시가 되어서야 마무리됐다. 그 현장을 르네상스 숙명 기획인터뷰로 소개한다. 자문위원단의 발언은 위원별로 구분하지 않고 자문위원회로 통칭했다.


이형진 대외협력처장(이하 이 처장): 바쁘신 가운데 멀리서부터 와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숙명여대 동문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애정으로 이 자리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오늘 이 모임은 숙명이 어떻게 학교 순위를 올릴 것인가에 대해 얘기하기보다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우리 사회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르네상스 숙명 정신을 실천할 수 있을지 알아보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먼저 여러분께 여쭙고 싶습니다. 숙명의 구성원들은 우리대학이 좋은 학교, 자랑스러운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과연 외부에서 보는 숙명의 모습은 어떨까. 우물 안 개구리였던 건 아닐까라는 궁금증이 듭니다.

    

르네상스 숙명 자문위원회(이하 자문위원회): 숙명여대 졸업생들에 대한 세간의 일반적인 평가가 있습니다. 굉장히 조용하고 희생과 헌신하는 봉사 정신이 강하다는 것이죠. 또 교색도 블루를 쓰고 계시는데 푸르고 깨끗한 이미지가 있습니다. 같은 여대라고 해도 이화여대와는 다른 느낌이에요.

    

강정애 총장(이하 강 총장): 숙대하면 조신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시죠. 그러나 아까 역사관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우리 숙명은 처음 만들어졌을 당시 여성교육에 대한 패러다임을 혁명적으로 바꾼 대학입니다. 남성 중심의 사회적 규범과 교육관에 정면으로 도전했으니까요. 한국 최초의 여류작가인 박화성,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무용가 최승희,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 이정희 등 셀 수 없는 선구자적 동문들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그것이 학풍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다르게 숙대생들은 진취적 성향이 강합니다.

    

자문위원회: 역사관을 둘러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숙대에 정말 자랑스러운 선배들이 이렇게 많았더군요. 후배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사회에서 벤처나 IT기업에 진출한 숙대생들을 참 많이 만나봤습니다. 이번에 네이버 대표로 취임한 한성숙 대표도 숙대를 나왔고요. 숙대생들의 당당함에 깜짝 놀랐습니다. 일종의 교육유산으로서 숙명의 혁명가들을 소개하는 교양과목을 하나 넣으셔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숙명의 뿌리찾기 운동으로 역사성 강조

    

자문위원회: 정숙, 헌신, 신여성, 개척정신...서로 대비되는 개념들이 숙명 안에 다 녹아있습니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21세기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가르쳐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단재 신채호 선생은 나라를 잃고 난 뒤 다시 되찾으려면 먼저 역사부터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주변 국가의 역사서에서 우리 역사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해 재구성하고, 그래도 확인이 안되면 직접 찾아가서 확인했다고 합니다. 20세기와 다른 대학이 되려면 먼저 우리가 서있는 위치가 어디인지 확인하는 역사찾기 과정이 필수죠. 오늘 함께 역사관을 둘러본 것도 그런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강 총장: 숙명은 대한제국 황실이 설립한 대학이고, 그렇기 때문에 여타 대학과는 다른 차별성을 가집니다. 일제 식민지 합병을 앞두고 황실 재산을 압류하려는 일제의 약탈에 맞서 황실 자본으로 학교를 만들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황실의 전통을 이으려는 피눈물 나는 노력의 결실이었다고 봅니다.

    

자문위원회: 나라가 쓰러져 가는 기막힌 상황을 앞에 두고 고종과 순헌황귀비가 교육에 투자해서 구국의 불씨를 살리려고 한 것이 아닙니까. 대단히 숭고한 정신입니다. 숙명이 어떤 인재를 키우느냐라는 질문에 두 분이 이미 답을 주신 것 아닌가 싶네요.

    

이 처장: 우리대학 옆에 독립운동의 성지인 효창공원이 있습니다. 임시정부 요인의 묘, 7위선열, 삼의사 묘와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고, 공원 옆에는 백범 김구선생님 기념관도 있지요. 아래도 200m 내려가면 이봉창 열사의 생가가 있습니다. 내년에 용산구에서 복원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또 올해는 대한제국 120주년(임시정부 120주년)이기도 하고, 2년 후면 3.1운동 100주년입니다. 이런 다양한 역사적인 맥락을 살펴보면 우리대학은 지정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민족이라는 가치와 뗄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문위원회: 100년 넘는 역사 동안 정말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많이 배출됐을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모교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선배들입니다. 그래서 학교가 배출한 선배들이 누가 있는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 뿌리 찾기 운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한번, 혹은 한 달에 한 번씩 숙명의 위대한 뿌리에 대해 알려주고, 그들이 살아온 역사를 생각하며 후배들이 어떻게 그 뜻을 이어나갈지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거기서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겠죠.

    

아이디어 차원에서 성균관대의 사례를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대는 6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사실 저는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고위과정에서 어떤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았죠. 무역학을 전공한 교수님인데도 유학과 옛 선비들의 지식을 경영학과 접목해 강의하는데 성균관의 역사성이 가진 의미를 설득력 있게 전하시더라고요. 참 감명 깊게 듣고, 성대의 구성원이 된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숙대도 마찬가지입니다. 111년의 역사를 학생들에게 알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눈으로 보는 것과 가슴으로 보는 건 다르죠. 가슴 깊이 그 뜻을 느끼게 하려면 스토리텔링이 필요합니다. 꼭 역사 문화학을 전공한 분이 아니더라도 상관 없습니다. 역사를 감동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교수님을 발굴해 입학식이나 MT, 워크숍 등 모임에서 학교 역사를 강의하게 하면 효과적일 겁니다. 저는 꼭 교수님들 워크숍에서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교수가 가슴으로 느껴야 학생들에게 말할 때도 그 기운이 뿜어져 나오죠.

    

이 처장: 머리로는 객관적 사실을 이해하지만 감동하는 것은 다른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는 말씀이시네요.

    

자문위원회: 그렇죠. 숙대를 나오신 분 중에서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달자, 은희경 이런 작가 분들이 어떤 면에선 교수님들보다 더 적합하실 수 있습니다. 이들이 소개하는 숙명의 역사, 혹은 ‘이달의 동문’을 보면 학생들도 ‘아, 나도 이렇게 훌륭한 선배의 뒤를 이어야겠다’라거나 ‘자랑스러운 유산을 잘 보존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처장: 현재 학교에서 동문들에게 발행하는 소식지가 있습니다. 여기서 훌륭한 동문들을 모시고 인터뷰를 하는데 이걸 확대하거나 초청 특강 형식으로 학생들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겠네요.

    

자문위원회: 대학 본부 차원에선 그렇고, 각 단과대 차원에서도 비슷한 프로젝트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111년의 역사를 가지게 된 숙대에는, 우리 학과가 언제 생기고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감동적으로 스토리텔링할 수 있는 소재가 넘쳐난다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교수님들의 헌신이나 재미있는 에피소드, 학과가 배출한 동문 등등 정말 다양한 얘깃거리를 발굴해서 학과 차원의 자체적인 역사홍보를 하면 좋겠습니다.

    

강 총장: 이번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을 교내에서 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신입생 때부터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역사관이랑 박물관 등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을 넣었죠.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외부에 나가는 것보다 훨씬 좋아했답니다. 예산도 절감하고, 더 많은 교수님들도 만날 수 있으니 다들 마다할 이유가 없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전까지는 대학 본부 주도로 OT를 운영했는데 단과대 별로 학장님들이 자율적인 프로그램을 하도록 했어요. 그랬더니 교수님들이 욕심이 생기셨는지 연극 극단을 초대한다던지 해서 참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답니다. 벌써부터 학장님들이 내년도 OT는 어떻게 할 지 고민하고 계세요.(웃음)

    



다전공 싱크탱크 설립으로 대학 브랜드파워 키울 수 있어

    

자문위원회: 대학들이 다 고유의 아이덴티티(identity·정체성)가 있습니다. 아까 말했듯이 숙명하면 먼저 드는 생각은 푸르름입니다. 인사팀 관계자들 말을 들으면 학생들이 산뜻하고 생기발랄하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숙대 만의구체적인 정체성을 잘 살리는게 참 중요합니다. 다른 각도로 말하자면 대표적인 브랜드겠죠. 무슨 학과하면 어떤 대학하고 딱 떠올라야 하는데 숙대는 111년 역사에 비해 그 부분이 조금 미약한게 사실입니다.

    

강 총장: 우리대학이 예전에는 약학대학, 영어영문학부, 생활과학대학 등이 강세를 보였고, 최근에는 언론과 미디어쪽에서 약진하고 있습니다. 실제 지상파 3사를 포함한 주요 방송사의 메인뉴스 앵커들이 모두 우리대학 출신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걸 어떻게 숙명의 핵심역량으로 체계적으로 키울 것인가가 고민입니다. 따로따로 떼어놓고 보면 강한데 구슬을 꿰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전통 가야금, 무용, 한식, 국문학 등 한국의 전통문화와 관련된 숙명의 유망 전공들이 흩어져 있는데 이걸 트레디셔널 칼리지로 묶으면 어떠냐는 조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시겠지만 제일 중요한 건 구성원들의 공감과 합의입니다.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백화점식 지원이 아니라 숙명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리는 방향으로 나가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마침 내년 교육부의 특대원 정원 인가를 앞두고 먼저 특수대학원부터 현황을 파악하는 중입니다.

    

이 처장: 말씀해주신 것들이 모두 학교가 계속해서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교육부가 특성화라는 이름으로 대학에 요구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죠. 그런데 기업이라면 과감한 선택과 집중이 가능하지만 학교는 욕심만큼 속도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자문위원회: 학과 중심적 사고를 벗어날 필요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학과 중심으로 되어있는 것은 일본의 대학 체계를 그대로 들여와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일본도 학과별 장벽으로 교류가 어려운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죠. 그걸 깰 수 있는 것이 바로 연구소입니다. ‘그래, 너희는 학부 중심으로 운영해라, 대신 우리는 싱크탱크를 통해서 다학제 연구를 해보자’라는 마인드로 가는거죠. 외국의 유명대학들을 보면 국가적인 싱크탱크들이 있습니다. 숙명도 우리 사회의 변화를 잘 살펴보고 유망 분야를 파악해서 전략적으로 연구소를 설립하면 어떨까요? 정부의 정책 입안자가 ‘어떤 분야는 숙대 어디에 전화해봐’라고 할 정도로 국가적인 자문이나 용역을 담당할 연구소를 만들고, 나아가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이나 브루킹스 연구소 같은 유명 싱크탱크와 공동 심포지움을 열고 전략적 MOU도 맺어 동아시아 지역의 핵심 연구소로 발전시킨다면 숙대 자체의 브랜드 파워도 자연스럽게 높아질 겁니다.

    

또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일종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그 우산 아래 모이게 만드는 방법이죠. 얼마 전에 ‘여시재’라는 기관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동아시아 문제와 통일 한국시대를 대비하는 일종의 싱크탱크입니다. 여기서는 어떤 프로젝트를 가지고 연구자를 모으는 방식을 씁니다. 저는 이를 프로그램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용산구가 해결해야 하는 다양한 문제 - 저소득층 복지, 환경문제, 다문화 등 - 가 있는데 이를 풀기 위해선 다양한 전공이 필요합니다. 상담을 위해 심리학이나 가족자원학이 참여하고 경영학, IT, 심지어 의류학과도 들어올 수 있죠. 이들이 모여서 지역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해법을 찾는 프로그램을 브랜드화하면 숙명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포지셔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겁니다.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고 학생들 역량도 강화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프로그램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 기반 수업으로 융합적 사고의 틀 키워야

    

이 처장: 학생들에 융합을 강조하고 그 어떤 종류의 미래 사회가 등장하더라도 이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교수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문제해결능력을 높이려면 다양한 범위에서 경험하고 지식을 축적해야 하는데 교수님들은 당신들 세대 때의 공부방식이나 교육 패러다임을 고수하며 학생들에게 이를 강요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3시간 내내 책에 나온 얘기만 읽는 강의도 있습니다.

    

자문위원회: 단국대 디자인학과에 35세의 주임교수가 있어요. 23살에 이미 유니크한 포트폴리오로 이탈리아, 프랑스, 뉴욕에 옷을 수출했죠. 석사 학위가 없어서 연구교수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학생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 괴로울 정도라고 합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이 교수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학생들은 지적 욕구가 왕성할 때인데 이를 충족시켜줄 사람, 가슴을 뛰게 만들어 줄 사람이 되어야 하는거죠.

    

숙명의 교수님들을 몇 분 만나봤는데 다 훌륭하신 분들이죠. 그런데 뭐랄까...학문적으로 서로 융합이 잘 안 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본인의 영역에선 뛰어나지만 다른 사안에 대해선 섣불리 접근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죠. 먼저 이런 문화 혹은 분위기부터 바꿔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 처장: 그런 필요성을 말씀드리긴 하지만 한편으론 다른 의견도 있습니다. 자문위원님들이 대학을 다니실 때에는 대학에서 전공 학점을 지금보다 훨씬 많이 들어야 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거보다 확 줄었는데 여기서 다른 전공을 또 더 들어야 한다면 어느 한 전공이나 영역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졸업하는 위험이 발생한다는 거죠.

    

자문위원회: 일견 동의합니다. 기본적으로 창의성은 전공에 대한 굳건한 지식이 깔려있어야 나오니까요. 삼성에서 직무 적합도를 보려는 것도 전공을 제대로 들었는지 보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꼭 융합과목을 들어야 한다는 것보다 학생들의 생각의 틀이 융합적이어야 한다는 거죠. 자신의 전공만으로 문제를 풀지 못하니 다른 이와 협력해야 하는데, 어떻게 그걸 수행할지 프로세스를 배우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삼성 얘기를 더 하자면, ‘영 삼성’(Young Samsung)이라고 전국의 대학생들을 선발해 역량을 키워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경쟁률이 매우 높습니다. 이들이 하는 일은 6개월 간 3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겁니다. 예컨대 삼성 바이오로직스라는 기업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싶은데 홍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과제를 줍니다. 혹은 갤럭시 시리즈의 차기 모델은 어떤 디자인과 콘셉트를 가져가야 할까도 묻죠. 여기에 삼성에서 선배들을 멘토로 붙여줘 기획안에 대해 코멘트를 하게 하고 마지막엔 사업부 사람들을 초청해 경연도 합니다. 경연을 봤는데 정말 학생들이 공부를 많이 한 흔적이 보입니다. 그런 형식의 프로그램을 회사가 아니라 학교에서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구청의 문제를 숙대생이 해결하고 나아가 서울시, 우리나라, 글로벌 문제를 스터디하고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하면 큰 의미와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강 총장: 외국 명문대들이 학생들로 팀을 만들어 특정 나라의 특정 문제를 타켓으로 삼아 이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처럼 우리 대학들도 이런 방식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프로젝트 수업 형식으로 기회를 키워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문위원회: 학생들에게 적어도 한 학기 정도는 자신이 배운 전공과 타전공을 합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학점제를 만들면 어떨까요? 그런 수업의 교수들에게는 인센티브를 주고요. 용산 전자상가의 공간을 활용하면 적어도 4~5개 정도는 모여서 할 수 있을 겁니다.

    

스탠포드 공대의 디 스쿨(d.school)이라고 좋은 사례가 있습니다. 디 스쿨은 단과대가 아닙니다.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이라는 혁신 방법론을 각 전공분야에 융합해 설립한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에는 여러 전공교수들이 달라붙어 커리큘럼을 만들어서 운영하는데 경쟁률이 아주 높고 학점도 주죠. 이 프로그램을 경험한 학생들은 여러 기업에서 콜을 받고 취업도 잘 됩니다. 융복합적 사고를 통해 문제해결능력을 체화한 친구들이니까요. 우리나라 일부 대학들이 비슷한 시도를 하는 것 같은데 숙대가 못할 일이 있습니까. 데이터 사이언스나 AI같은 다학제 주제를 가지고 학위를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됩니다.

    

숙대가 현재 가진 인적자원으로는 새로 생기는 이머징필드(신흥 학문분야)를 모두 커버할 수 없습니다. 무(無)에서 생기는 거니까요. 거기에 참여할 교수 50~70%를 내부에서 충원하고 나머지는 외부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수혈해 팀을 만들면 됩니다. 외부 전문가의 경우 자부심을 주는 방식으로 초빙하면 예산도 걱정보다 크게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서강대 아트앤테크놀로지 전공이 이러한 방법을 잘 활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학 연구성과와 글로벌화는 동전의 양면

    

자문위원회: 대학의 국제화 역량에 대해 얘기해보죠. 전에 어떤 대학의 총장께서 자문을 요청하셔서 그 대학의 국제화 역량을 보고자 홈페이지에 가봤습니다. 교수님들의 출신학교와 연구논문 리스트를 쭉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아, 이 교수님과는 A라는 분야를 하면 되고 저 교수님과는 B라는 분야를 함께 하면 되겠구나’라는 그림이 그려지더라고요. 그런데 숙대는 그런 교수님들의 정보가 잘 정리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정보는 교수님들이 각자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해주고 학생들이 이를 보고 석박사로 오던 포스트닥터로 오던 유도를 해야 합니다. 좋은 논문 실적이 있으면 글로벌화는 저절로 되는거죠.

    

그렇다면 대학 집행부가 할 일은 뭐냐, 바로 이렇게 연구역량이 있는 교수님들을 보호하고 응원하는 제도를 만드는 겁니다. 삼성병원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교수들의 연구역량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조사해본 적이 있어요. 한 10%가 엑설런트한 실적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병원에서 계속해서 환자를 더 많이 받고 진료하라고 하니까 그런 연구역량을 가지신 분들...소위 SCI급 논문을 최소 3편 이상 쓴 분들의 수를 유지하는 게 더 어려워졌습니다. 당연하죠. 뭐 월급 더 올려주는 것도 아닌데 무엇하러 진료하랴, 연구하랴, 가르치랴 바쁘게 삽니까. ‘에라, 그냥 하던대로 하자’고 생각하죠

    

강 총장: 지난해 연구비 시스템을 한번 개편한 바 있습니다. 아직 1년이 안 지났는데 결과를 한번 보고 피드백을 받아서 산학협력단에서 필요한 조정을 하려고 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연구가 탁월한 분들은 더욱 독려할 수 있도록 연구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고민 중입니다.

    

이 처장: 세계적인 대학평가로 QS세계대학평가와 THE(타임스고등교육·Times of Higher Education)평가가 있는데요, 우리가 그런 외부의 평가나 순위에 연연해야 하느냐, 그들이 만든 대학의 패러다임에 따라가야 하느냐라는 의견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를 들어 이런 평가들이 대부분 영어논문 업적을 요구하는데 학문의 성격도 감안해야 한다는 거죠.

    

자문위원회: 글로벌화가 교수님들을 짓누르고 압박하는 방식으로 가야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냥 교수님들의 연구성과나 논문을 검색하기 쉽게 만들면 되죠. 그리고 잘하는 분야는 학교가 지원하겠다 정도만 하더라도 충분히 자율성을 가지고 움직이실 분들입니다. 집행부가 고민할 사항은 ‘이렇게 해보니 새로운 시장이 있더라’라는 점을 인식시키고 의견이 다른 분은 대화하고 설득하여 개혁의 주축세력으로 끌고 가는 겁니다. 힘들겠지만 집행부가 변화를 이끌어야합니다.

    

재정 안정을 위한 제3의 길 모색

    

자문위원회: 모든 대학들이 변화와 혁신을 꾀하지만 재정적인 문제에 부딪히죠. 숙명여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나 고대 같은 곳과 기부금을 비교하면 아무래도 부족한 부분이 있겠죠. 그래서 기부와 관련된 어떤 선언이나 잘 짜여진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숙대에는 아태여성정보통신원의 한중미래문화 최고경영자과정과 경영전문대학원의 최고경영자과정(SELP)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최고위과정 원우들에게 기부문화를 활성화시키는 방법도 있죠.

    

강 총장: 그래서 저는 대학의 현행 수입구조를 크게 3가지 파트로 나누어 발전시켰으면 합니다. 현재 학부 과정은 학령인구가 줄어드니까 3분의 1 규모로 줄어들고, 고령화 때문에 늘어나는 평생교육의 수요를 담당할 곳이 3분의 1.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 수요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일반대학원 석박사 과정과 특수대학원 쪽을 3분의 1로 늘리는 식으로요.

    

글로벌사회교육원과 함께 수익사업의 다양화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유망 분야를 선점해서 키우는 동시에 국내외 유명기관과 MOU 등을 맺고 협력 과정을 만드는 거죠. 현재 우리대학이 하고 있는 르 꼬르동 블루-숙명아카데미처럼요. 숙명여대와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함께 제휴를 맺고 숙명-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 과정을 만들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고, 이밖에도 한식 세계화나 오케스트라, K-Pop 등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오고 있어요.

    

자문위원회: 창업보육센터에 있는 오픈스퀘어-D는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하는거죠? 그런 식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채널을 다각화하면 좋겠습니다.

    

강 총장: 지금 서울시와 함께 캠퍼스타운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앞으로 더 규모를 확대하려고 합니다. 또 용산구와도 전자상가를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에 맞는 프로그램 및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을 가지고 실행하는 단계입니다.

    



르네상스 숙명, 변화는 지금부터

    

이 처장: 우리대학이 111년 동안 성장해오면서 노력을 많이 했지만 외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사회의 변화를 수용하는 모습들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늘 이 자리도 외부 자문위원분들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학교의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서입니다. 허심탄회하게 말씀주신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자문위원회: 저희가 공통적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변화는 교수님들로부터 시작된다는 겁니다. 조금 냉정하게 말하자면 대학에 계신 분들이 시대 변화를 직접 피부로 느끼고 계신지 의문입니다. 총장님 개인적으로, 혹은 집행부 단독으로 어떤 문제를 바꾸거나 해결할 수 없습니다. 모든 구성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단결해야 가능하죠.

    

이 처장: 동감합니다. 학생들의 애교심이나 지적능력은 결국 교수님들의 수준에 맞춰 따라가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들 말씀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주니까요.

    

자문위원회: 오늘 학교의 역사와 시설을 둘러보고 이렇게 총장님과 말씀을 나눠보니 어느새 저희도 숙대의 일원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숙명이 굉장한 프런티어 정신을 가지고 탄생했구나’ 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르네상스 숙명은 바로 그 정신을 살리는 거라고 봅니다.

    

강 총장: 두 가지 의미가 있죠. 하나는 지금 얘기한 우리 숙명의 창학정신을 되살리는 일.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가는 일입니다.

    

취임사에서 ‘미래의 가치를 품은 글로벌 숙명’을 약속했습니다. 제가 다행히 인복이 많아서인지 정말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어요. 앞으로도 제가 ‘행시, 사시 500명씩 합격시킨다’, 이런 건 약속드릴 수 없습니다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지역사회와의 협력, 생태계 구축이나 환경보호, 상생이라는 분야는 숙명의 마음을 모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겁니다.

    

5월 19일 창학기념식에 맞춰서 우리대학에 들어온 신세계푸드와 함께 청년응원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커피 할인을 시작하는 게 그 예입니다. 머그잔이나 텀블러를 들고 와서 커피를 사면 1,800원을 1,000원으로 할인해주죠. 종이컵을 아껴 환경보호에 앞장서면서 커피값은 내리고, 업체는 자연스럽게 청년을 응원한다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기업사회공헌), CSV(Creating Shared Value·공유가치창출)을 하고요. 작게는 교내에서 시작해서 용산구 전체로 확산시킬 수 있습니다. 또 우리 용산구에 봉제공장이 약 300개가 있다고 합니다. 이 봉제공장들의 숙련된 기술과 대학이 가진 자원을 어떻게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볼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처장: 올해 신입생 환영회에서는 서울시의 혁신형 사회적 기업인 빅워크의 앱을 이용해 기부참여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휴대폰을 켜고 걸으면 이 기록을 모아서 후원을 받아 기부하는 방식입니다. 숙대 구성원들이 대거 참여해 500만원을 모아 용산구 내의 저녁을 못 먹는 학생들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기부했습니다. 숙명의 정신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이바지하는 삶을 사는 것인데, 일상의 조그만 실천이 봉사로 연결된다는 경험을 대학생들이 하게 됐죠. 이번에는 창학기념일에 맞춰 숙명 노동조합과 함께 빅워크 기부 캠페인을 쭉 이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자문위원회: 말씀을 들으니 숙명의 변화가 작은 곳부터 서서히 시작됨을 느낍니다. 이사회부터 학생들까지 모든 구성원들이 마음을 모아 르네상스 숙명을 꼭 이루길 바랍니다.

    

강 총장: 오늘 마련한 이 자리도 그런 의지를 보여주는 신호가 됐으면 합니다. 오늘 늦은 시간까지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