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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인터뷰

INTERVIEW

“검은색 테이프로 나 자신을 표현해요” 공간예술 작가 곽선경 동문

  • 조회수 1470
  •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인터뷰자
  • 작성일 2023-09-14
  • 곽선경 동문(회화과 85) 인터뷰




작가의 의도를 담은 장치를 특정 장소에 설치해 공간 전체를 작품으로 만드는 예술, 바로 ‘공간예술’이다. 공간예술 작가 곽선경 동문(회화과 85)은 유학 시절 영원한 이방인으로 공존했던 자신의 유목민적인 삶을 작품에 투영해 왔다. 본인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검은색 테이프라는 재료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곽선경 동문의 이야기를 숙명통신원이 들어봤다.


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숙명인들을 만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저는 85학번으로 회화과에 입학, 졸업 후 드넓은 세계에서 예술가의 꿈을 자유롭게 펼쳐보고자 1993년 뉴욕으로 떠났습니다. 공부를 마친 이래 뉴욕을 기반으로 Sun K. Kwak(곽선경)으로 작품 활동 중입니다.

 

2. 작가님이 처음 미술 쪽에 꿈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어린 시절 유난히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몇 시간이고 그림을 그려도 지치지 않았으니까요. 고등학교 때 친구를 따라 화실을 방문한 후 본격적으로 미술학도의 진로를 택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아트 뮤지엄 전시 모습. 

_"Untying Space_Asian Art Museum" masking tape, adhesive Vinyl Sheet, metal bar, 39.3 ft x 85.6 feet, 2012


3. 지금까지 많은 그룹전, 개인전을 열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가님의 전시는 무엇인가요?


작품 성격상 규모가 커질수록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 점에서 샌프란시스코의 ‘아시안 아트 뮤지엄’ 전시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작업을 하던 중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 미술관에 어시스턴트를 속히 구해달라고 요청했어요. 큐레이터가 미술관 직원 전체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놀랍게도 거의 모든 직원이 찾아와 점심시간, 쉬는 날에도 도와줬어요. 심지어 큐레이팅 부서 미팅을 현장에서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미술관 전체가 작품에 참여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기쁨과 힐링의 작업 현장을 보며 “이 자체가 곧 예술이며 가치구나!” 하고 감동한 기억이 있습니다. 

 

4. 작가님이 추구하는, 작품에 꼭 담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생명력,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 비움, 자유로움, 의식의 확장, 초월적 세계 등을 담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가면 왜 그림들이 죽은 듯이 걸려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중학교 때 빈센트 반 고흐의 전시를 보고 그림의 살아있는 생명력에 신선한 충격을 받아 기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생명력 같은 비물질적 가치를 재료로 표현하는 그림 그리기에 완전히 매료됐습니다. 


또한 늘 자유를 갈망했기에 용기를 내 미지의 세계를 향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어요. 뉴욕 대학원 시절에 시작한 ‘공간 드로잉’(Space Drawing)을 통해 여러 나라와 지역에서 작가의 삶을 살면서 비움으로써 자유롭고 확장하는 삶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5. 공간예술 특성상 작품이 완성되는 공간은 전시 현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전시 현장과 작가님의 예술 세계를 합쳐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대학원 졸업 후 작업실 없이 전시장을 이동 스튜디오로 삼아 미국의 여러 주를 오가며 작업했던 시절에 공간 드로잉을 발전시키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어 저는 제한된 시간 속 특정 공간에 머물며 반응하고 호흡을 불어넣어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프로젝트를 했는데요. 오래전 유학길에 오른 이후 타지에서 영원한 이방인으로서 자유롭게 공존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저의 유목민적인 삶을 반영한 것입니다. 


이 작업은 특정 공간의 시각적, 역사적, 사회적 특성에 대한 작가의 반응을 공간 위에 선적인 추상 드로잉으로 탈바꿈합니다. 그 결과인 사유와 초월적 공간의 시각적 현실(Pictorial Reality)로 들어오는 관람자들이 각자 새롭게 인지하고 반응함으로써 또 다른 시공의 확장으로 완성되는 작업입니다. 


"Work & Process"  드로잉 퍼포먼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2010

6. 검은색 마스킹 테이프만을 이용한 드로잉이 작가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흔한 연필, 펜이 아닌 검은색 마스킹 테이프로 드로잉을 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1995년 대학원 재학 시절 저와 재료의 거리를 최소화하는 재료를 찾기 위해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다가 검은색 테이프를 발견했습니다. 이후 공간에 제한 없이 2차원과 3차원 평면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제 자신의 연장선으로 표현했습니다. 처음에는 물감으로 한 번에 그려진 작품인 줄 알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마스킹 테이프를 겹겹이 쌓아 만든 드로잉 선이라는 것을 알게 돼요. 우리가 지각하는 현실의 진실성에 의문을 던지게 하는 거죠. 대량 생산 후 쉽게 쓰이고 버려지는 재료로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시적인 작품을 만들어 ‘삶의 유한성과 덧없음’, 그 기억의 자취로 인한 ‘영원성’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7. 대학 생활 중 지금의 작가님에게 도움이 된 것이 있나요?


‘새로운 시도’를 강조하셨던 교수님의 가르침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졸업 전시회를 준비하던 당시 워낙 다양한 시각적 실험을 하며 스타일이 확립된 시기가 아니어서 갈등을 겪었습니다. 결국 일주일 정도 학교에 가지 않고 집 작업실에서 뒹굴뒹굴 고민하다가 새로운 아이디어로 신나게 작업해 졸업 전시 지도교수님께 보여드렸습니다. 꾸중 들을 각오를 했는데 교수님이 “다시 집에 가서 이런 작업 하나 더 해 오라”고 하셨던 즐거운 기억이 있습니다.


8. 우리 대학을 졸업한 뒤 뉴욕대 대학원으로 진학했는데 유학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언어 장벽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미국 예술대학원 수업은 자기 작업물을 가지고 와서 학생들끼리 자기 생각을 얘기하고 교수님이 마무리하는 형태였습니다. 이때 제 작업에 대한 추상적인 생각을 영어로 풀어내기 어려워 답답함이 컸습니다. 이때부터 그날 하고 싶었던 마음속의 모든 말을 “드로잉 일기”(Drawing Diary)로 표현한 후 날짜를 적어 지금까지 모아두고 있습니다. 이 드로잉 박스를 열고 추억하다가 시각적으로 서로 어우러지는 스토리를 펼쳐보며 영감을 받기도 합니다.

 

토론토 “Untying Space_Yonge 8 Adelaide”  graphic film, 44ft 2in x 225ft 11inc, 2022  “Nuit Blanche”


9. 작가님의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9월 19일 오픈하는 제주 도립미술관 기획 전시 ‘프로젝트 제주: 이주하는 인간 호모 그라티오’를 위해 귀국할 예정입니다. 계속 새로운 작업을 해나가는 동시에 예술에 거리감을 느끼는 대중들과 공공미술, 워크숍, 아티스트 토크 등 여러 형태로 소통하고 싶습니다. 또한 방대한 시각적 부산물에 노출된 다음 세대에 관심을 가지고 소통하는 일에도 시간을 할애하고 싶습니다.


10. 작가님 같은 진로를 희망하는 숙명의 후배들에게 조언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예술가의 길은 절대 쉽지 않은 긴 여정입니다. 이 길이 과연 자신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길인지 확신을 얻을 때까지 스스로와 대면하고, 확신한다면 용기를 내 전진하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그 여정을 통해 만나게 되는 나와 내 작업을 이해해 주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며 함께 격려하고 나아가라고 덧붙이고 싶습니다.


취재: 숙명통신원 21기 김선우(역사문화학과22), 이채윤(프랑스언어·문화학과22)

정리: 커뮤니케이션팀



샌디에이고 어린이 박물관. "Untying Space_New Children's Museum" masking tape, artist tape, gaffer tape, plastic grips, varnish, cushioned floor, varnish, dimensions variable, 2009


베니스비엔날레 부속 전시장소 전시(2021-2023). "Rolling Space: A Tale of an Eagle" polished stainless steel, urethane paint, 5.6ft W X 8.8ft H x 3ft D,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