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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인터뷰

동문 INTERVIEW

“사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공장도, 자본도 아닌 사람” 룻츠커뮤니케이션 현명숙 대표

  • 조회수 1804
  •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인터뷰자
  • 작성일 2016-04-12

1) 성장환경은 어떠셨나요?

 

아버지가 사업을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학창시절부터 내 안엔 사업가의 기질이 흘렀던 것 같다. 숙명여대 재학 시절, 학교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대한항공 건물이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통해 그곳에 처음 인연을 맺은 나는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난 뒤에도 마치 참새가 방앗간을 들르듯 그곳을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그곳에서 만난 당시의 사원, 대리급의 아저씨들과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그냥 놀러 왔다며 찾아가고, 한번은 내 친구들 예쁘다며 동기들을 데리고 찾아가고, 한번은 다른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었다며 호떡을 잔뜩 들고 찾아갔다. 생각해보라, 단순히 아르바이트생으로만 생각했던 어린 학생이 이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잊지 않고 자신들을 찾아오며, 게다가 학생 주머니의 푼돈으로 호떡까지 사 온다면, 그 얼마나 기특하고 예뻐 보였겠나. 나는 이렇게 그 아저씨들과 친해졌고, 아저씨들과 친해지자 아저씨들은 그들에겐 별거 아닌 이야기지만, 내게는 엄청난 기회가 되고 정보가 되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대한항공 연하장 이야기였다. 당시 사장이었던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은 연간 엄청난 수의 연하장을 지인, 거래처 사람들에게 돌렸는데, 그 디자인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던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저 디자인 전공인데 저도 한번 그려 볼께요. 제 것도 한번 올려주세요!” “아 그래? 그럼 너도 한번 가져와바라”

이 간단한 한마디 대화로 나는 사업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 매우 간단한 허락이었지만 허락이 있기까지는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고 나서도 꾸준히 그들을 방문했던 시간의 기억들과 그것으로 형성된 상대와의 친밀감이 바탕에 있었던 것이다. 사업을 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공장도, 자본도 아니다. 바로 ‘사람’이다. 이외의 것은 후에 순차적으로 얻어 가면 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학생 때 인연을 맺고 친분을 쌓아간 당시의 사원, 대리 급의 ‘청년’들은 후에 내가 30대, 40대가 되어 왕성한 활동을 펼칠 때쯤 그 기업에서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핵심적인 결정을 내리는 부장, 차장급이 되어있다. 나는 후배들이 이것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사업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다. 지금의 인연들을 소중히 생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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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학창시절 전공과 지금의 기업은 관계가 있으신지요? 어떻게 지금의 창업 또는 경영을 하

시게 되셨나요?

 

관계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내 사업의 물꼬를 튼 것이 대한항공 연하장 납품이었고, 이것을 통해 나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분명 내가 디자인을 전공했기에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지만, 창업을 함에 있어, 혹은 창업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함에 있어 전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바로 패기와 근성이다.

 

대한항공 연하장을 납품할 때만 해도 말이 디자인이었지, 내가 한 건 정말 별거 없었다. 그때만 해도 포토샵이니, 일러스트니 그런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없었기 때문에, 시안을 만들 때도 일일이, 하나하나 직접 그리고, 오려 붙이고 하곤 했다. 운 좋게도 조양호 회장이 내 디자인을 골라 납품을 받았을 때도 문제는 있었다. 일단 납품을 받긴 했는데 이 물량을 어디서 해결해 오느냐였다. 당시 나는 업계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경험이 풍부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내가 가진 패기와 근성으로 정면승부를 했다. 학교를 마치고 무작정 충무로 쪽을 돌아다니며 물량을 인쇄할 곳을 찾았다. 인쇄를 하고 나서는 겉에 봉투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도 있었는데 몇 천장에 해당하는 물량을 집으로 가져와서 하나하나 직접 붙였다. 보다 못한 어머니 아버지가 두 손 걷고 나서 함께 붙어 준 기억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해서 납품기일 안에 연하장을 모두 납품할 수 있었고, 당시 어린 나이로서는 만지기 힘든 꽤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이렇듯 지나고 보면 창업 계기는 단순했다. 카드회사에서 디자인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내가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사장이라면 일이 더 많이 들어오고 거래처를 상대할 때도 훨씬 편할 텐데’라는 생각에서 사업이 시작되었고, 실제로 사장이 된 후,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사업 규모가 커졌다. 그렇게 시작한 회사는 직원 15명이 2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내실 있는 디자인 업체로 성장했다.

 

3) 지금까지 위기나 어려움이 없으셨는지요? 있으셨다면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2005년도 프랑스 휴가에서 우연한 기회에 레오놀그렐 두피케어를 받고 제품에 반해 새로운 유통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프랑스 명품 샴푸를 들여왔지만 국내에서는 수요가 많지 않았다. 지금처럼 프리미엄급 샴푸는 국내에 출시되지도 않았을 때였다. 시중의 샴푸는 1만원을 넘지 않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환율이 올라 마진율은 점점 낮아졌다. 그 무렵의 레오놀그렐 제품은 프랑스 명품으로 유명 할리우드 스타들이나 상위 1% 부자들이 찾는 샴푸였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들은 레오놀그렐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샴푸는 잠깐 몸에 닿았다가 씻어 내버리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이익 구조는 악화됐고, 건대 스타시티 1층에 오픈했던 탈모센터도 문을 닫았다. 나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비즈니스를 모두 중단했다. 그리고 더 큰 시련이 찾아왔다. 프랑스 본사에서 더 이상 제품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최소 구매 수량을 채우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나는 그 동안 납품하던 피부과와 에스테틱을 찾아 고객 반응과 의견을 조사했다. 그들은 제품력을 인정했다. 납품을 중단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라며 응원했다. 나는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사업을 재정비했다. 그 동안 이끌어 왔던 디자인 능력을 접목했다. 그리고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눈높이를 맞췄다.

 

레오놀그렐을 처음 들여왔을 때는 자신감이 넘쳤었다. 기능이 뛰어나니 누구든 알아보고 구매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마진율을 계산해 스티커 하나도 제작하지 않았었다. 고객들을 위한 배려가 전혀 없었던 것이 문제점이었던 것이다. 나는 럭셔리 명품 브랜드에 걸맞는 디자인을 패키지에 입혔다. 포장지, 리본, 스티커, 택배박스를 럭셔리한 콘셉트로 맞춰 제작했다. 고객들에게 보낼 자체 카드도 만들어, 단 한 명의 고객에게라도 정성을 담아 보냈다. 제품 설명서도 한글로 번역해 함께 동봉했다. 기능에 이미지를 더하니 소비자들이 점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1년 3월, 자체 온라인숍을 오픈하며 6개월 만에 회원 수 2천명 돌파, 매출 5배 신장을 기록하게 되었다.

 

4) 기업가로서 기업운영에 대한 평소의 생각이나 일화를 들어 소개해주십시오.

 

창업을 하고 싶던, 취업을 해서 임원급으로 승진하고 싶던, 기업가, 즉 CE0가 된다면 하는 일은 간단하다. 적재적소에 적임자를 배치하는 것. 지금 내가 이 회사의 CEO로 있으며 회사를 운영하지만, 직접 컴퓨터를 붙잡고 디자인을 하거나, 회사의 자금을 관리하며 회계업무를 보지는 않는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은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을 뽑아 디자인 업무를 맡기고, 회계를 잘 보는 사람을 뽑아 회계 업무를 맡기는 것이다. 그리고 전체적인 회사의 운영 상태를 보고 상황에 맞게 일부를 시정하게 하는 것이다. 기업가는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그 전체가 조화를 이룰 수 있게 적절한 요소를 구성, 조직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경영자를 꿈꾸는 후배들이라면 이것을 명심하고 현재 자신이 배우고 있는 학문과 함께 전체와 요소를 구분하는 능력을 키우길 바란다.

 

또 하나는 기업가는 회사의 기준이자 기둥이다. 외부의 충고를 진지하게 듣되, 자신만의 흔들리지 않는 철학과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레오놀그렐을 수입하던 초기, 나는 레오놀그렐이 백화점에 입점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품입점을 문의하기 위해 백화점에 찾아갔었다. 당시 입점브랜드를 담당하는 담당자는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마치 잡상인인냥 문전박대를 했다. 홀대를 받으며 나는 생각했다. 아 레오놀그렐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내 상품자체가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되어 저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게 해야겠구나. 그 뒤로 나는 레오놀그렐과 관련된 모든 마케팅 전략을 수정했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자체 고객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려 노력했다. 덕분에 지금은 오히려 백화점 쪽에서 입점을 권유하며 나를 찾아오고 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굳건히 버티며 흔들리지 말기를 바란다. 남에게 휩쓸려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5) 룻츠커뮤니케이션의 성공요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룻츠커뮤니케이션즈의 성공요인은 혁신성에 있다. 그 중에서도 전략적 혁신성이 두드러진다. 룻츠커뮤니케이션즈는 대한항공, 외환은행, 비씨카드, 하나카드, 우리카드, 현대증권, 서울메트로 등 유수한 대기업들의 브랜딩과 디자인마케팅을 위한 디자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탤런트 하지원 씨를 모델로 내세워‘하지원 카드’라는 별명이 붙어 단기간에 백만장이 판매되었던 현재 하나카드(구 외환카드)의 투엑스 신용카드도 룻츠커뮤니케이션즈의 작품이다.

처음에는 작은 크리에이티브 디자인 회사였던 룻츠커뮤니케이션즈가 대기업 금융회사들과 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로 차별화 전략을 꼽을 수 있다. 우리는 단순히 디자인 편집 업무만 하는 대행사가 아니라 전체적인 콘셉트 기획과 브랜드 개발까지 종합적으로 한다. 금융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맞춤형 기획을 하고 있는 것이다. 타 경쟁사와 차별화된 창조적 프로세스가 오늘날 룻츠커뮤니케이션의 성공을 가능케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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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룻츠커뮤니케이션즈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룻츠커뮤니케이션즈는 1994년도에 설립된 디자인 마케팅 전문기업이다. 다수의 대기업과 글로벌 기업의 마케팅에 필요한 기획 및 디자인제작물을 제공하여 고객사의 영업매출 향상과 발전에 기여해 그 공을 인정받으며 성장해왔다. 대표적 약력은 외환은행의 브랜딩 및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을 4년째 연속 수행하였고 2014년 말에는 외환카드와 하나카드의 합병을 위한 비쥬얼아이덴티티 통합 개발 프로젝트도 수행하였다. 그리고 현대증권 아이맥스카드의 상품 아키텍처, 상품 브랜드 네임, 전체적인 비쥬얼 아이덴티티도 수행한 바 있다. 지하철 1234호선인 서울메트로와 2013년 2014년 연속 연간으로 공익광고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여 독특한 캐릭터 개발을 통해 지하철 에티켓과 각종 공익광고 디자인을 개발했다. 또한 지식경제부 산하 디자인 진흥원이 선정하는 우수 디자인 전문기업으로 2012년도부터 2016년까지 5년 연속 자격을 부여받기도 했다.

 

2006년부터는 사업 다각화를 통해 레오놀그렐의 국내 독점수입공급권을 획득하여 제품을 유통해오고 있다. 레오놀그렐은 45년의 전통을 지닌 프랑스 두피 모발 케어 제품이다. 유해한 화학성분을 최대한 배제하고 최고급 천연 식물성 원료만을 이용하여 고객 개개인의 두피, 모발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하여 두피 모발의 건강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해결해 준다. 레오놀그렐의 전제품에는 유해 화학 계면활성제가 함유되어 있지 않다.

 

7) 본인의 성장동력은 무엇이며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그것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고민하고 긍정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한다. 사람은 언제든지 갑작스럽게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나는 언제나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와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 위기를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이 나의 좌우명이자 삶의 철학, 성장동력이다. 최근 몇 년간 염원하고 노력한대로 2014년 10월에 북아현동에 ㈜룻츠커뮤니케이션즈의 사옥을 건립하여 디자인사업과 유통마케팅사업이 최적의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한 공간을 만들었다. 이 공간에서 우리 직원들과 직원들의 가족 모두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회사를 꾸준히 성장, 발전시키고 임직원 모두 늘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일할 수 있는 회사로 최선을 다해 운영하는 것이 계획이다.

 

8) 디자인, 광고 업계 종사자로서 현재 업계의 패러다임과 전망은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디자인이란 단순히 예쁜 것, 아름다운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삶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에는 삶을 얼마나 쾌적하게, 그리고 즐겁게 하느냐의 의미도 내포되어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디자인은 삶의 모든 영역을 관통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크고 작은 디자인회사들이 많이 설립되었다가 사라지고 있다. 이것은 긍정적일 수도 혹은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일단은 긍정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회사규모가 크지 않아도 자금이 많지 않아도 얼마든지 좋은 아이디어 하나로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전 디자인 회사들은 대부분이 큰 규모였지만 요즘에는 일인 혹은 둘이서라도 컴퓨터 한대만 있으면 디자인 회사를 차릴 수 있다. 내가 추천하고 싶은 것은 디자인과 함께 플래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후배들이 활동하게 될 향후 십 년 정도는 디자이너 품귀현상이 일어날 것이라 본다. 디자이너들이 귀해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하달된 디자인만 편집하는 것이 아닌, 이론적 지식까지 갖춰 통합적 플래닝, 즉 기획 능력까지 갖춘 디자이너들은 분명 높은 몸값을 올리게 될 것이다. 자신이 직접 기획한 프로젝트를 시각적 언어로 표현해 낼 수 있는 디자이너를 시대는 원하고 있다.

 

9) 요즈음에는 취업, 창업, 공무원시험 등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현재 업계에 계신 선배로서 동종 업계에 진출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 나는 젊은 청년들이 자신의 꿈보다 취업에 목매어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상관없이 남들이 다하는 소위 ‘대세’에 휩쓸려 가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경영, 회계학문도 분명 필요한 학문이고 중요하다. 그러나 자신이 거기에 맞지 않는데도 그저 ‘남들도 다하는데’하는 불안함 때문에 떠밀려 가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물론 경제가 좋지 않고, 우리 때와 다르게 취업시장이 경직되어 불안한 것은 이해하지만 젊은 후배들이 좀 더 패기와 열정을 가지고 세상과 싸웠으면 한다. 그냥 온몸으로 부딪혀 봤으면 좋겠다. 터놓고 말해서 솔직히 요즘 학생 신분으로 아르바이트나 인턴을 하면 얼마나 벌겠나. 그런 작은 것에 연연하지 말고 좀 더 큰 것을 배우기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자신이 배우고 싶은 회사에 찾아가 보라. 가서 “부모님께 계속 손을 벌릴 수는 없으니, 식비와 교통비만 주십쇼. 돈 안 받고 배우면서 일하겠습니다”하고 무작정 매달려보기라도 해봐라. 만나주지 않는다면 하루고 이틀이고 찾아가서 그 회사 사장님이 나오실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라도 봐라. 그렇게 하면 한번은 안 만나주겠나. 솔직히 나도 이번에 새로 제품을 런칭하고 회사도 이전하고 해서 너무 바빴지만 후배가 이렇게 계속 연락하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안 만나 줄 수가 없겠더라. 그렇게 사장님을 만나서 일하게 된다면 한 달이야 정말 식비 교통비만 주더라도 설마 계속 그렇게 주겠나. 모르긴 해도 알바 하는 만큼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설사 못 받는다 하더라도 그 회사를 다니며 배운 경험과 노하우는 그까짓 알바 한 두 달하는 것 보다 훨씬 값진 보물이 될 것이다. 내 경험상 20대에는 정말 일이 재미있어서 밤을 새며 몸이 고되더라도 마음으로 기뻐하며 일해야 한다. 그래야 30대, 40대에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원하는 일과 여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다. 우리 후배들은 좀 더 도전하고 경주마처럼 전력을 다해 뛸 수 있는 20대를 보냈으면 한다.


[출처: 앙트러프러너십센터 발간 ‘숙명 기업가정신 사례집’ 中]

**편집자주: 일부 표현 및 문구 등은 기사에 맞게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