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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인터뷰

INTERVIEW

삼성을 빛내는 별이 되다. 이은미, 박정선, 정원화 상무

  • 조회수 4160
  •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인터뷰자
  • 작성일 2015-12-04

총성 없는 전쟁터라 불릴 정도로 치열한 대기업의 경쟁구도 속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당당히 임원 자리에 오른 이은미, 박정선, 정원화 상무. 우리대학 출신의 삼성그룹 계열사 여성임원 3인방은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위기를 기회로 삼으며 지금의 자리에 오른 그들은 단지 “일이 좋아서”라고 입을 모은다.

 

 

세 분 모두 삼성그룹 계열사에서 임원으로 재직 중이신데, 맡고 계신 업무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undefined이은미 상무(이하 이) 삼성물산 패션부문 남성복사업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갤럭시, 로가디스, 엠비오, 란스미어, 빨질레리, 일모 등의 브랜드 디자인 총괄을 맡고 있어요.


정원화 상무(이하 정) 제일기획 국내캠페인부문 캠페인4본부를 맡고 있어요. ‘캠페인본부’는 광고를 포함해 기업과 브랜드를 위한 IMC(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플랜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역할을 합니다. 제 직종은 AE(Account Executive)이고, 클라이언트를 대면하면서 기업과 브랜드가 가진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일을 하죠.


박정선 상무(이하 박) 삼성에 입사하고 20여 년 동안 경영관리를 담당해왔어요. 예산, 투자 등 적재적소에 리소스가 잘 쓰이는지 관리하고 제품개발, 생산, 판매, 마케팅 등 회사의 주요 기능이 잘 돌아갈 수 있게 지원하며 그 결과로 얻어진 제품의 매출과 손익을 관리하는 일이죠. 올 초에 실리콘밸리 법인으로 전배를 받고 현재 주재생활을 하고 있어요.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임원 자리에 오르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한국회사에서 경영관리부문은 남성이 우세한 편이죠. 제가 1994년 삼성여성공채 1기로 입사해 삼성전자 재무 부문에 배치된 첫 대졸 여사원이었으니까요. 남자직원들 틈에서 적응하면서 사회가 어떤 곳인지 알아가느라 좌충우돌했던 기억이 납니다. 입사 후 묵묵히 일에만 매진하다 보니 어느덧 지금이네요.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늘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어요. 누가 시킨 것도,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일이 좋았죠. 책임감이 강한 성격 탓일 수도 있고요.

공채로 입사해서 많은 브랜드를 거쳤어요. 어느 브랜드, 어떤 상사를 만나도 그 순간에 최선을 다했고, 무슨 프로젝트를 맡아도 잘할 수 있다는 긍정 마인드로 일하다보니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요즘 같은 처절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절실한 노력이 필요하죠. 직장에서의 ‘임원’이라는 타이틀은 성취감과 만족감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회생활의 이유와 목적 자체가 ‘임원 승진’이 될 수는 없죠. 처우나 직급을 위해 이직하기 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전문성을 높이고 스스로를 프로모션 시키는 게 중요해요.

 

 

일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거나 슬럼프에 빠졌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들려주세요.

undefined 크고 작은 어려움이 많았죠. 제가 회사 도움을 받아 MBA를 다녀온 후 2007년에 사업부로 배치됐을 때였어요. 사업부는 실제로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조직이라 본사에서의 업무와는 상당히 달랐죠. 회사에서는 일로 인정받을 때가 가장 행복한데, 상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했어요. 그러던 중 Soulsearching(자기탐구)를 시작했고 ‘나 자신을 바꾸자’는 답을 찾았어요. 3개월 동안 인근 절에서 일요일마다 일천배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지만, 그 경험이 저를 크게 성장시켰죠. 그때 그 상사 분께 한없이 감사해요.

입사 17년차에 로가디스라는 브랜드에서 7년 동안 디자인실장으로 있다 보니 아이디어는 고갈되고 매너리즘에 빠졌어요. ‘기회는 본인이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고 회사에 간곡히 요청한 결과 이태리 유학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1년의 유학기간 동안 다양한 문화체험을 통해 크리에이티브를 업그레이드 했어요. 슬럼프가 ‘도전’이라는 용기를 준 셈이죠.


사실 매번 새로운 일을 맡을 때마다 포기하고 싶어져요.(웃음) 20년 동안 해온 일이지만, 늘 어렵고 또 늘 기쁩니다.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잠도 안 오고 밥도 못 먹을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데, 끝나고 나면 힘들었던 기억은 금세 잊고 문제해결의 개운함과 기쁨만 남죠. 마치 어려운 문제풀기에 중독된 듯한 현상이에요.(웃음)

 

 

학창 시절 꿈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학교생활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학창 시절부터 대기업, 삼성에서 일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물론 미팅도 하고 친구들과 여행도 많이 다녔죠. 방학 때는 늘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대기업 사무 보조, 은행 안내원, 인구조사 등 다양한 일을 했어요. 그 경험이 원활한 대인관계의 밑거름이 된 거 같아요.


삼성전자에 입사하는 게 꿈은 아니었어요.(웃음) 경영학이 아닌 다른 분야로 대학원에 진학해 전문적인 직업을 갖고 싶었어요. 당시 저는 내성적인 성격에 경상도 산골 출신이라 서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힘들었어요. 어린 마음에 예쁜 서울말을 쓰는 친구들 앞에서 사투리를 쓰는 제가 창피하기도 했고요.(웃음) 그래서 외부활동보다는 미래를 위한 공부에 시간을 쏟았죠.


대학생 때부터 ‘광고 만드는 사람’이 정말 멋있어 보였어요. 광고회사를 다니면 매일 기발한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최신 유행의 패션과 문화를 만끽할 수 있을 거라는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었죠. 그래서 광고동아리 활동이나 공모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어요. 수상 여부를 떠나 작업 자체가 좋았고, 그 마음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나 선배로서의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undefined 뉴스를 통해 요즘 젊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누구나 똑같이 힘든 거니까 지혜롭게 헤쳐 나갈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가족’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제게 남편과 두 아들이 없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일을 그만두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가족이란 든든한 버팀목이자 위안이 되는 존재랍니다.

 

누구에게나 몇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기회를 모르고 지나치거나 혹은 준비가 안 되어있어서 놓치는 경우가 많죠. 늘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준비하고,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생각을 가졌으면 해요. 독서와 여행 많이 하시고요.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끝이라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대기업 입사를 꿈꾼다면 정공법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방법은 있습니다. 요즘은 갓 졸업한 신입보다는 회사가 원하는 스킬을 가진 인재를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당장 삼성 입사가 힘들다면 다른 회사에서 경쟁력을 키우고 경력으로 입사하는 길도 있다는 거죠. 현재를 탓하지 말고, 멀리 내다보고 해결책을 찾다보면 훌륭한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