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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인터뷰

INTERVIEW

“영화를 볼 때마다 세상이 한 뼘씩 넓어져요" 씨네21 기자 남선우 동문

  • 조회수 2440
  • 작성자 통합 관리자
  • 인터뷰자
  • 작성일 2023-07-21

“영화를 통한 대화를 끌어내는 것. 그것이 제 일이자 영화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영화가 건넨 질문이나 감정은 영화를 보기 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극장을 나서게 한다. 바로 그 질문들이 좋아서, 그리고 그것을 공유하며 소통하고 싶어 영화와 함께하는 삶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 


영화 전문매체 ‘씨네21’ 남선우 기자(한국어문학부 16)는 영화를 보는 것을 넘어 창작자의 의도를 가늠해 보고 관객과 영화를 연결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남선우 기자의 사진. 몸은 측면을 향해 있고 얼굴은 정면을 향해있다.


1.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20년부터 씨네21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남선우입니다. 한국어문학부 16학번이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올해 2월 현대문학 전공으로 석사 졸업했습니다.


2. 영화를 사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제가 열 살 때 어머니가 대여점에서 비디오를 빌려와 틀어주신 영화 <라붐>(1980)이 떠올라요. 주인공이 처음 만난 남자와 춤을 추는 마지막 장면이 어린 마음에 꽤 충격적이었죠. 재밌는 건 영화가 끝에 다다르기까지 펼쳐진 시청각 정보들을 종합해 보면서, 이 이야기에는 그런 결말이 어울린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거예요. ‘사랑이 안 이뤄져도 꽤 근사한걸?’하고 끄덕였어요. 그때 영화는 지금껏 내가 봐온 동화나 어린이용 방송과는 다른 무언가를 제공하는 매체라고 직감했던 것 같아요.


3. 영화기자라는 현재의 직업을 갖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영화를 좋아하고, 읽고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긴 했지만 곧바로 영화기자를 꿈꿨던 건 아닙니다. 영화기자가 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건 대학생 때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관객기자단을 하면서부터예요. 영화 리뷰를 쓰고, 감독을 인터뷰하고, 그에 대한 반응을 주고받는 일이 적성에 맞았어요. 그 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씨네21 기자가 강의하는 글쓰기 수업을 들었어요. 그때 제출한 과제물 덕분에 씨네21 객원기자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고, 한 학기 정도 대학원 생활과 객원 활동을 병행하다가 현재의 직업을 갖게 되었어요.


4. 영화를 통해 경청하게 되는 질문들이 좋아 극장에 오갔다는 동문님의 말이 인상 깊었어요. 학창 시절 본 영화 중 인상 깊은 한 편을 소개해 주세요. 


대학생 때 인디스페이스 관객기자단 시절 <피의 연대기>(2018)라는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월경을 테마로 여성의 몸과 삶을 탐색하는 이 영화는 네덜란드인 친구를 만난 감독의 질문으로부터 출발해요. ‘왜 그들에게는 탐폰이, 우리에게는 패드형 생리대가 더 익숙할까?’ 누군가는 뻔한 대답을 건넬 수도 있겠지만 감독은 월경에 얽힌 신화부터 편견, 정혈을 처리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 생리대 무상 지원이라는 화두까지 던지며 우리의 인식을 확장합니다. 


5. 그 영화는 학창 시절과 지금의 동문님께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월경 컵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어쩌다가 패드를 구입할 때도 더는 검은 봉지를 요구하지 않게 됐어요. 비로소 피 흘리는 기간을 혐오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게 된 거죠. 그간의 부정적 감정이 어디서부터 온 건지, 그걸 해소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쓸 수 있는지 영화가 알려줬으니까요. 


<피의 연대기>가 제게 미친 영향은 매우 직접적인 동시에 실용적인 종류의 것이라 흔한 사례는 아니에요. 하지만 제가 아끼는 수많은 영화가 이런 식으로 주의를 환기할 겨를을 줬어요. 좋은 영화를 볼 때마다 제가 인지하는 세상이 한 뼘씩 넓어지는 기분이었어요. 그게 오늘 본 영화가 별로여도 내일 새로운 영화를 보러 가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무대 위 카페에서나 쓸만한 작은 정사각형 책상이 두 개 놓여있다. 그리고 그 앞엔 성별을 알 수 없는 사람 두 명이 각자 마이크를 잡고 서로를 보며 대화를 하고 있다. 방청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영화 <로스트 도터> 관객과의 대화 현장


6. 영화 관련 기사를 쓰는 만큼 다양한 작품을 접해보고 평가해야 하는 것이 일상일 것 같아요. 영화를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고 염두에 두는 점은 무엇인가요?


이제 저는 영화를 볼 때 개인적 호오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대신 관객이 작품으로부터 무얼 기대하는지, 제작진은 이 작품으로 무얼 하고 싶은지 염두에 두고 극장에 들어섭니다. 이때 제가 눈여겨보는 건 영화가 그 예측을 충족 또는 배반하는 방식이에요. 이야기 속 예상과 해소의 순간들이 저를 포함한 관객에게 얼마나 흥미롭게 설득되는지를 고려하는 편입니다.


7. 영화를 대한다는 건 결국 사람을 대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영화는 결국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자는 영화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직업적으로 영화인을 끊임없이 만나게 되니까요. 그렇기에 직업 윤리적으로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영화기자로서 가장 난감한 순간은 호평하기 힘든 작품의 관계자들을 만날 때예요. 그런 작품의 감독이나 배우, 홍보 담당자를 대할 때 부러 칭찬을 지어내거나 괜한 불평을 꺼내지 않으려고 해요. 대신 제게 주어진 지면이나 화면에서, 정제된 비평적 언어로 생각을 말하려 합니다. 영화인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표현의 균형감각을 갖추려고 노력해요.


8. 최근에는 동문님이 속한 씨네21 디지털미디어팀에서 영화 매체가 나아갈 다양한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동문님이 생각하는 좋은 영화의 본질과 방향성은 무엇인가요?


4년 차 기자인 제가 영화의 본질을 논하기엔 콘텐츠 산업 또한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저도 씨네21 디지털미디어팀 소속으로 유튜브 영상, 트위터 라이브 방송, 웹페이지 형태의 보도물 등을 만들면서 기존과 다른 채널로 독자를 만나고 있는데요. 그에 따라 제 역할이 기자가 되기도, 구성작가가 되기도, MC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요즘은 제가 최근 인터뷰했던 한 감독이 얘기한 것처럼 “영화는 어떻게든 자기 생각을 누군가와 나누게 만든다”라는 진리를 떠올리곤 합니다. 방법만 여러 갈래로 늘어났을 뿐 결국 영화를 통한 대화를 끌어내는 것. 그것이 제 일이자 영화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킬링 로맨스라고 적힌 배너를 한 가운데 뒤에 두고, 좌측으로는 여성 2명과 우측으로는 남성 2명이 만세를 하고 있다.

영화 <킬링 로맨스> 팀과 함께한 토크룸 라이브 현장


9. 동문님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어요.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의 괴리, 지금 좋아하는 일을 계속 좋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있을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을 진정으로 알게 되는 순간은 일로서 직접 해보면서 부담감과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때라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아직도 인터뷰이 섭외 전화를 걸 때 긴장하고 생방송 진행이 어색해요. 하지만 동시에 막상 인터뷰이를 만나면 신나서 질문을 쏟아내고, 하고 싶은 말을 제한된 분량과 시간 안에 글로 옮기는 미션이 짜릿하거든요. 발행된 기사를 본 분들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게 되면 만족감은 배가 되고요. 


이 괴리를 견디게 하는 원동력은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핼버스탬이 『진짜 이야기를 쓰다』라는 논픽션 작법서에서 말한 문장을 빌려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우면서, 궁금한 것을 물으면서, 생각하면서 돈을 벌었다. 이것보다 더 즐거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10. 동문님과 비슷한 진로를 꿈꾸고 있는 학생들,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 하는 숙명인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다른 분야가 아닌 영화계에서 기자로 살면서 마음에 드는 점은 이거예요. 제 발로 이 세계에 뛰어든 사람들 틈에서 일한다는 것.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하게 된 사람이 없고 서로의 열정을 알아봐 주는 업계죠. 저는 이런 감각을 평생 그리워했거든요. 진로를 치열하게 고민해 볼 틈이 잘 주어지지는 않는데 그런 와중에 한 번이라도 자신에게 솔직한 선택을 해본 사람들이 여기 모여 있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거기서 어떤 희망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 하는 숙명인 분들, 막상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모든 게 착각이었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날도 올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끌리는 일에 도전해 봐도 된다고 말하는 까닭은, 해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남이 권하는 길로 가봤자 내가 걷고 싶었던 길에서 어떤 냄새가 날지, 어떤 인연을 스칠지, 어떤 돌부리에 넘어질지 궁금해서 못 참을 거예요. 그게 별로 궁금하지 않다면 그만큼 그 길을 원하지 않았다는 얘기니 오히려 다행이고요. 아무튼 이런 호기심은 어릴 때 해결하는 편이 낫다고 믿으면서, 저도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체력은 남아돌고 책임은 덜한 지금, 같이 방황해 봐요!


작성: 숙명통신원 21기 김수민(한국어문학부22), 22기 이시진(문화관광학전공22)

정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