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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인터뷰

동문 INTERVIEW

故 정재만 교수 잇는 국가무형유산 승무 이수자 '춤추는 시인' 이유나 동문

  • 조회수 147
  •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인터뷰자
  • 작성일 2024-12-27
  • 국가무형유산 승무 이수자 이유나 동문(전통문화예술대학원 전통무용 전공 석사) 인터뷰



"춤은 세상과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살아 숨 쉬는 예술입니다"


춤이 좋아 평생 춤을 추는 춤꾼이 된 이유나 동문. 고 정재만 명예교수의 뒤를 이은 국가무형유산 승무 이수자이자 2010년 등단한 시인으로, '춤추는 시인'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최근에는 평생 춤과 함께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담은 책 '나는 왜 춤을 추는가'를 출간해 관심을 모았다. 숙명통신원이 이유나 동문을 만나 전통무용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1.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춤추는 시인' 유하(流霞) 이유나입니다. 필명 유하는 '서쪽 하늘에 흐르는 노을'이라는 뜻입니다. 제가 보라색과 노을을 좋아하고, 이상향을 뜻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2010년 <문예 운동>으로 등단한 시인으로 '오늘의 시인'으로 선정된 적이 있고, '잔아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숙명여자대학교 전통문화예술대학원에서 전통무용 전공 석사학위를 이수한 후 무용단 '백제연무'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 무용 전공이 있는 여러 대학 중에서 숙명여대를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숙명여자대학교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숙명여대 무용과는 더욱 그렇습니다. 다른 대학원에서는 대부분 이론 중심의 수업을 하는데 이곳에서는 이론 수업과 함께 실기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스승 故 정재만 교수님이 계시는 대학이었기에 아무런 망설임 없이 숙명여대를 선택했습니다. 제가 한 일 중 잘한 일이 바로 숙명여대에서 공부한 것입니다.



3. 동문님이 어렸을 때 춤을 추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 안에 있는 춤이 밖으로 나온 것은 다섯 살 때쯤입니다. 부모님 말씀에 의하면 저는 어릴 적에 혼자서 보자기를 이리 뿌리고 저리 던지며 놀거나 머리에 뒤집어쓴 채로 돌고 멈추기를 반복했습니다. 또 어느 날은 밥을 먹다가 젓가락을 양손에 들고 밥상을 때리며 장단도 쳤다고 합니다.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닌데 그렇게 춤을 출 수 있다는 사실이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신기합니다. 아마 제 안에 있는 춤의 본능이 외부로 터져 나온 것 같습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그런 저를 호되게 야단쳤습니다. 항상 바른 자세로 밥을 먹게 했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벌을 줬습니다. 취미로만 춤을 춘다고 생각했던 부모님은 제가 춤을 전공하겠다고 하자 크게 반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춤이 없는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살아도 산 것이 아니라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 과감하게 가출을 감행했습니다. 그 이듬해 그토록 원했던 무용과에 입학했고, 그렇게 춤이 좋아 평생 춤을 추는 춤꾼이 됐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결정에 일말의 후회도 없습니다.


이유나 동문과 고 정재만 교수. 

4. 국가무형유산 승무 이수자가 되기까지 정말 많이 노력했을 것 같아요. 이 과정에서 정재만 교수님과의 특별한 인연도 있다고요.


대학에 입학해 춤을 추던 중 인생에서 가장 운명적이고 중요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바로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 보유자 벽사 정재만 스승님인데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스승님은 과분하게도 저를 많이 예뻐해 주셨습니다. 저는 양평에서도 더 들어간 청계산 끝자락에 살고 있었는데, 정재만 스승님의 승무를 배우기 위해 토요일마다 서울로 가서 10년이 넘도록 춤 공부를 했습니다.


원래 스승님 아래서 10년을 배운 뒤 다시 3년의 전수 기간을 거쳐야 이수자 자격시험을 볼 기회를 얻고, 그 시험에 합격해야 이수자가 됩니다. 스승님을 만난 지 많은 세월이 흘러 이수 시험을 허락받았을 때 드디어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기쁘고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에 걱정도 됐습니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엄청난 연습과 노력 끝에 이수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5. 얼마 전 병을 심하게 앓았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건강이 어떠신가요?


어느 날 공연을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자는 내내 몸이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피곤한 탓이겠지' 하고 넘겼다가 늦은 아침에 거울을 보니 얼굴뿐만 아니라 온몸이 부어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춤을 공부하고 가르치고 무대에 올리는 일을 수십 년간 해왔는데 최근에 무리한 모양입니다. 병원에 입원해서 진단받은 급성 신장병은 일순간에 모든 것을 무너뜨렸습니다. 단순히 부어오른 몸만이 문제가 아니라 코끼리처럼 부은 다리는 무릎을 굽힐 수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1분 이상 서 있을 수 없고, 앉아서 다리를 내려놓으면 더 부어올라 통증이 심해졌습니다. 식사할 때는 밥 한 톨 삼키지 못할 정도로 내장 기관까지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죽음보다 더 심한 고통이었습니다. 너무 힘든 통증보다도 이런 흉측한 몰골로 춤추지 못하고 살아가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다시 살린 것은 모순되게도 춤이었습니다. 다시 춤을 추고 싶다는 욕망이 저를 나락의 수렁에서 구해냈고, 다행히 현재는 재활을 통해 건강한 몸으로 춤을 추고 있습니다.


6. 평생 춤을 춰온 동문님이 생각하는 춤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춤은 가장 원시적인 언어로 소통하고 감동하는 예술입니다. 글이 없고 그림 도구도 없던 시대에도 춤은 있었습니다. 인류는 기뻐도, 슬퍼도 춤을 췄습니다. 춤의 역사는 바로 인류의 역사입니다. 여러 장르의 예술이 있지만 춤만큼 직접 소통하는 예술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 전통무용은 어르고 달래고 풀어내어 잘되기를 바라는 기원의 마음이 바탕이 된 춤입니다. 요즘처럼 나의 이익만을 위해 경쟁하는 사회에서 춤은 세상과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살아 숨 쉬는 예술입니다.



7. 최근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인기를 끌면서 춤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전통무용은 다른 춤보다 진입 장벽이 높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전통무용은 어렵지 않습니다. 봄바람에 흔들리는 꽃잎도 춤이고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도 춤입니다. 다만 춤을 흉내내기로 접근할 것인가, 보여주기식 기술에만 만족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춤은 흉내내거나 보여주기 위한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을 그저 몸짓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춤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의 이끌림에 몸을 맡긴다면 그것이 바로 춤이니 춤의 세계로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


8. 지금까지 무용가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언제인가요?


아주 오래전 투르크메니스탄이라는 생소한 나라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이곳에는 19세기 중엽부터 강제 이주한 고려인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과 우호 교류의 장이 있었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우리의 모습과 닮은 그들을 만나자 우리의 한과 정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부르는 아리랑 노래에 즉흥 춤이 어우러지면서 모두가 주체할 수 없는 감동으로 행복한 눈물을 흘린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9. 동문님이 평생 춤과 함께 살아온 이야기를 책 '나는 왜 춤을 추는가'에 담아 출판했습니다. 무용가로서 책을 출판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많은 분이 저를 '춤추는 시인'으로 불러줍니다. 저는 춤이 몸으로 쓰는 글이며 몸으로 그리는 그림이고 몸으로 연주하는 음악이며 몸으로 표현하는 연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왜 춤을 추는가>는 이런 제 생각과 경험이 담긴 소중한 책입니다.


20년 전 국민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많은 세월이 흐른 뒤 논문을 쓰고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20여 년의 기간은 나를 성숙시키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만약에 그러한 과정이 없었다면 '과연 내가 지금과 같은 논문이나 책을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논문이 단순히 이론을 중심으로 기술한 것이 아니기에 제 생각과 경험을 주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읽어질 수 있도록 책을 내게 됐습니다.



10. 동문님은 현재 백제연무(百濟戀舞) 무용단 대표로 활동 중인데요. 대표로서 바라는 점이 있나요?


백제연무 무용단은 백제의 문화와 정신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전문 무용가들이 모여 있습니다. 지역 무용 예술인들이 아주 부족한 현실이지만 편을 가르지 않고 그 정신과 문화를 함께 하는 마음으로 상생하길 바랍니다. 또한, 백제연무 무용단이 백제 문화와 정신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11. 마지막으로 숙명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지금 이곳이 우리가 꿈꾸는 곳임을 알고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서로의 빛을 나누고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꽃과 빛이며 사랑이고 소중한 존재임을 알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었으면 합니다.


취재: 기획취재팀 22기 김선형(정치외교학과 22), 23기 이민지(문헌정보학과 23)

정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