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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인터뷰

동문 INTERVIEW

평범한 '찍찍이'로 예술의 한계를 넘다…벨크로 장신구의 선구자 김용주 동문

  • 조회수 92
  •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인터뷰자
  • 작성일 2025-02-04
  • 2024 올해의 금속공예가상 수상자 김용주 동문(공예과 00) 인터뷰



"한낱 벨크로 조각도 압력과 무게를 받으면 예술 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어요"


김용주 동문(공예과 00)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벨크로'(일명 찍찍이)로 자신만의 예술품을 창작하는 독창적인 작가다. 예측불허의 미학을 통해 예술가의 무게를 아름다움으로 승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15년간의 작품 활동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올해의 금속공예가상>을 수상했다. 숙명통신원이 김용주 동문의 깊이 있는 예술 세계를 들여다봤다. 

 

1.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생존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탐구하기 위해 예술 작업을 하는 김용주 작가입니다. 숙명여자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 00학번으로 입학해서 금속과 섬유를 전공했습니다.


2. 얼마 전 고려아연이 주최한 2024년 <올해의 금속공예가상>을 수상했는데요. 기분이 어떠신가요?


한국에서 금속공예, 장신구 분야로 10년 이상 활동을 평가하고 상을 주는 하나밖에 없는 큰 상이기에 정말 영광입니다. <올해의 금속공예가> 상에 지원하면서 금속공예가로 시작해서 예술 장신구를 만들게 된 지난 길을 되돌아 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즐거운 시간도 있었지만, 15년 동안 작가로서 고되고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는데 상을 받아 자신감도 생깁니다.



3. 학부 시절 공예과의 다양한 세부 전공 중 '금속'과 '섬유'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1, 2학년 동안 도자, 금속, 섬유, 칠 등 4가지 전공을 모두 배우고, 3학년부터 세부 전공을 선택합니다. 금속과 섬유 전공은 함께 필수로 배우는 체계였고, 다행히 두 가지 전공 모두 저에게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금속 작업은 금속판으로 시작해 완성 작품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표면 처리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줄질, 사포질, 광을 내는 과정이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완성된 작품을 보고 느낀 만족감과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또한 금속 표면에서 나오는 미세한 차이가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섬유 작업은 4가지 재료 중 가장 친근하고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섬유라는 재료와 기법이 역사적으로도 여성적이고, 작품을 만들 때 안정감을 주는 재료라 저에게 잘 맞았습니다.


4. 동문님이 그동안 '장신구'를 주제로 창작 활동을 해온 이유가 궁금합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제 손으로 직접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는 매력을 느껴서 시작했습니다. 큰 설치 조각작품은 구조를 만들 때 다른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규모도 커요. 학생 시절에는 재정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혼자의 힘으로 완성하기 힘들어 보였습니다. 이에 반해 장신구는 규모가 훨씬 작아서 제가 혼자 감당할 수 있어 보였어요. 


그러다 미국으로 대학원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본인이 원한다면 그 어떤 재료로 만들어도 장신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원하는 재료를 찾고 그 재료에 맞는 작업 방식을 개발해 내는 창작 과정이 저에게는 너무 즐거웠습니다.


5. 동문님은 벨크로를 소재로 한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세계 최초의 작가인데요. 많은 소재 중 벨크로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값비싼 금속으로 작품을 창작했던 학부 시절과 달리, 대학원 진학 후에는 저렴하고 보잘것없는 비금속 소재로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가능성을 연구했습니다. 당시 벨크로뿐만 아니라 핀, 콩, 빨대, 케이블 타이와 전선 마감 캡도 있었습니다. 그중 끊임없이 새롭고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만들어낼 확률이 가장 높은 재료는 벨크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값비싼 은, 금과 금속재료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장신구 계열에서는 값비싼 금속을 사용해야만 타인의 인정을 받고, 작가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아요. 전 꼭 그래야만 하지는 않다고 믿었습니다. 평범한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예술성 있는 작품을 끊임없이 창작해 낼 수만 있다면 예술계에서 인정받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오기도 있었습니다. 


 

6. 벨크로 하나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는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경험은 2015년, 약 9년 전의 일입니다. 그때 저는 작가란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없다면 작가의 생이 마감된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시도해 보지 않았던 거대한 작품을 창작하는 도전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습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중력'이라는 요소가 제 작업을 방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위로 솟구쳐 올라가고자 하는 형태는 중력에 의해 처참히 밑으로 끌어내려졌고, 웅장함을 지향했던 작품은 초라하게 바닥에 축 늘어져 버렸습니다. 그때 벨크로라는 재료 하나만으로 대형 작품을 만들어내기에 한없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은 포기해야 하는가' 하는 큰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7. 이 경험을 통해 특별하게 느낀 점이 있나요?


존재 가치조차 인정받지 못하던 요소가 때로는 가장 큰 방해물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 그 존재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대상이 되고, 그사이에는 넘기 어려운 문턱이 생깁니다. 이 문턱을 저는 '존중의 문턱'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 문턱을 넘기 위해서는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야만 합니다. 방해하는 요소를 존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것을 존중할 수 있다면 새로운 방식으로 결과물을 창작할 수 있습니다. 작업을 시작할 때는 방해물을 전혀 예상치 못하기에 당연히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창작물을 마주할 때 경이로운 새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8. 동문님의 작품들을 보니 형태가 다양하더라고요. 만들고 싶은 형태를 미리 정해두는지, 아니면 만들면서 작품 형태를 정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창작 과정을 통해 그 형태를 정합니다. 처음부터 만들고 싶은 형태를 정해둔다면, 그것은 결국 제 머릿속에 있는 것을 재현하는 작업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창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제가 상상하지 못한, 예측할 수 없는 형태가 나오는 것입니다. 저에게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은 "새롭지 않다"와 같은 의미로 와닿습니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지 못하면 예술가로서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다 보니 예측 가능함보다 오히려 예측불허를 추구합니다.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전에 계획하기보다 그때그때 즉흥적인 결정을 하며 창작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9. 작품 중에는 색감이 붉은 작품이 많은데,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미국에 있는 벨크로 회사에서 재료를 무상으로 지원받고 있는데요. 2011년 공장을 견학하던 중, 시중 철물점에서는 볼 수 없던 독특한 붉은색을 발견했습니다. 이 색은 한쪽은 짙은 검정, 다른 한쪽은 붉은색으로 양면이 달라 그라데이션 효과(색조 등을 단계적으로 바꾸는 기법)를 주기에 적합했고, 작품에 생동감과 역동성을 더해주기에도 알맞았습니다. 


최근 벽 작업에서 사용한 붉은색은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붉은색은 핏줄을 상징하며 생명력과 밀접하게 연결된 색입니다. 붉은색을 통해 작품에 강렬한 감정과 역동적인 에너지를 불어넣고 싶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10. 벨크로로 이렇게 입체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신기해요. 완성까지 가장 오래 걸린 작품은 무엇인가요?


가장 오래 걸린 작품은 《필수다양성: 성숙의 과정》입니다. 이 작품은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약 2년에 걸쳐 완성됐어요. 벽에 설치되는 대형 조형물로서 처음 창작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벨크로를 한 조각 한 조각 손으로 자르고 연결하며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이 처음이라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예술가로서 느껴온 압력과 무게를 더욱 직접적으로 추상화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11. 작품을 만들다 보면 영감이 떠오르지 않거나 슬럼프를 겪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한 상황에서 동문님만의 극복 방법이 있을까요?


작업을 하면서 느끼는 무게와 압력은 정말 커요.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고, 그런 부담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해도 모든 일이 완벽하게 풀리는 것은 아니고, 결과를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나 상황을 탓하게 되니까요. 저는 제 주변의 신뢰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정서적, 사고적 지원을 받습니다. 관객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되죠. 


그런 지원을 받으면서 다시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되고, 그 과정에서 영감이 떠오릅니다. 사실 영감은 처음 떠오를 때보다 작업을 계속하는 과정에서 더 많이 발전합니다. 머릿속에서 잠깐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작업의 시작에 불과하고, 그것을 깊이 있게 발전시키려면 지속적인 작업이 필요합니다. 결국, 작업을 계속하면서만 진정한 창작의 기쁨을 느낄 수 있고, 발전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2. 현재까지 《꿈틀: 회생의 신호》 《The Strength it Takes to be Alone》 등 크고 작은 수많은 전시회를 진행했어요. 그중 어떤 전시회가 가장 기억에 남나요?


2021년 서울 공근혜갤러리에서 진행한 《꿈틀: 회생의 신호》 전시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일반적으로 작가들은 표현하고 싶은 형태나 실현하고 싶은 비전이 있어 작업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새로운 작품을 끊임없이 창작해 내야만 한다는 책임감의 무게와 압력을 느껴 작업을 시작하는 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오랜 시간 저 자신을 의심하고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자연이 압력과 무게를 받으며 생존하는 과정에서 남긴 산맥과 골짜기를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저도 제가 압력과 무게를 받으며 생존하는 과정에서 남긴 제 작품을 부족하다고 생각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3. 동문님이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여러분 모두 타인이 모르거나 타인에게 털어놓기 힘든, 털어놓아도 이해받기 힘든 압력과 무게를 느끼고 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타인의 충분한 지원과 인정 없이 오랜 시간 홀로 압력과 무게를 경험하다 보면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잃을 수 있어요.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거나 심지어는 자신이 가치가 없는 사람은 아닌지 자책과 의심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제 작품을 보면서 여러분 자신의 가치를 상기시키고 조금이나마 활력을 얻으셨으면 합니다. 한낱 벨크로 조각도 압력과 무게를 받으면 예술 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는데, 굳건히 살아가고 있는 여러분의 인생도 지금 당장 한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그보다 더욱 아름답고, 값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14. 예술 분야는 유독 현실과 꿈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예술인을 꿈꾸는 숙명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예술인으로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작업하고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긴 과정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가능하다면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예술의 상업적인 형태를 고민하고, 돈을 벌어보는 도전도 해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상업 작품을 할 때는 타협을 두려워하지 않길 바랍니다.


하지만 순수예술로 돌아왔을 때는 잘나가는 작가의 작업을 흉내 내거나 방향성을 따라가기보다 자신만의 고유한 작업을 창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왜 예술을 하는가?'에 대한 솔직한 성찰도 필요합니다. 그 솔직함이 때로는 보잘것없고 부끄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게 핵심입니다. 예술가의 역할 중 하나는 대부분이 드러내지 않는 솔직한 내면을 용감하게 소통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후배분들에게는 자신만의 진정성과 솔직함을 찾고, 작품으로 다양하게 표현해보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취재: 숙명통신원 22기 김선형(정치외교학과 22), 이시진(문화관광학전공 22)

정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