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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는 내 숙명' 3년간 캄보디아·베트남 다녀온 해외봉사왕 김주희 씨

  • 조회수 9537
  •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보도일자 2013-10-30

해외봉사의 매력

 

“2011년 대입 직후 제 모습은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했어요. 그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 했던 첫 번째 일은, ‘해외봉사 리더십그룹’에 가입하는 것이었어요. 처음엔 그저 준비해간 프로그램을 잘 진행해주고,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며 잘 지내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실전에 들어간 순간 제 생각은 부숴졌어요.”


 

우리 대학 사회과학대학 소속 리더십그룹인 ‘SFV(South-east asia Frontier Volunteer)'의 김주희 씨(정치외교학과 11학번)는 첫 해외봉사의 경험을 이렇게 추억했다.

 

“어려운 환경 속 아이들의 예쁜 마음이 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느낌을 받아요. 그리고 제가 가졌던 불평불만이 얼마나 미성숙한 생각이었는지에 대한 반성을 많이 하게 돼요. 이렇게 아이들에게 받은 사랑으로 제가 더 성숙해지는 것이 저를 자꾸 해외로 이끄는 매력인 것 같아요.”

 

SFV를 통해 해외봉사를 다녀왔던 단원은 재면접이라는 까다로운 단계를 거쳐야 이듬해에도 봉사를 떠날 수 있다. 주희 씨는 1학년이던 2011년 베트남에 다녀온 뒤로 재면접을 두 번이나 보고 모두 합격해 총 세 번이나 해외봉사를 다녀온 특이 케이스다.

 

“올해에는 동기와 후배가 면접관이었지만, 아이들을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에 자존심 같은 것은 다 버리고 두 번이나 도전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성취했죠.”


 

봉사의 추억

 

환경이 매우 열악한 베트남 띵자 지역은 아직 사회주의 성향이 남아있어 외국인에 대한 경계심이 강해 당과 경찰의 허가를 받는 것이 어렵다. 단전은 물론이고 씻는 것부터 화장실 문제까지 여러 어려움이 따랐다. 심지어 캄보디아에서는 물갈이를 하는 바람에 몸에 수포가 나기도 했고, 위생개념이 부족해서 나는 냄새들 때문에 지내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불편함이 그 지역 아이들에게는 일상이기 때문에 불편한 내색을 절대 드러내지 않았다.


 

“더위도 큰 어려움이었어요. 한창 더운 시기에 활동을 떠나니까 땀도 많이 흘리고 체력적으로 많이 지치고 힘들었어요. 하지만 단원들끼리 서로 격려하며 지냈기 때문에 3년 동안 크게 아픈 친구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죠.”

 

“헤어지던 날, 서로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손을 흔들며 다시 볼 기약 없는 인사를 했을 때의 울컥한 마음이 아직도 생생해요.“

 

SFV는 한 NGO 단체를 통해 지정받은 보육원을 매년 방문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그 곳의 아이들은 SFV를 기억하고 항상 그리워한다고 한다. 보육원의 한 나무에는 단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단원들이 베트남에 오는 7월이면 먼 도시로 취직해 나간 아이들까지 돌아와 반겨줄 정도이다.

 

“한 아이가 공책을 들고 와서 제 이름과 사인을 해달라고 했어요. ‘왜 나한테 사인을 받아갈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1년 뒤 다시 방문했을 때 그 아이가 그 공책을 가져와서 저를 기억하고 있다고 말해줬을 땐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이었어요.”


 

해외봉사? 그거 스펙 쌓으려고 가는 거 아니야?

 

다수의 ‘대학생 해외봉사’가 가까운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짧은 기간 동안 겉핥기식으로 이뤄진다며 스펙쌓기의 일종일 뿐이라고 치부하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한 ‘해외봉사왕’의 의견을 묻자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저 스펙이라고 생각하고 다녀온 사람과 진심을 다해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확연히 차이가 나요. 그렇기 때문에, 전자의 친구들에게는 해외봉사경험이 스펙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주희 씨는 숙명인들에게 ‘소수정예의 봉사단’에 참여하기를 추천했다. 대규모일수록 아이들과 교감하기에 어려움이 따른다고 한다.

 

“내가 불편해하면 단원 모두가 불편해지고, 내가 한번 웃으면 모두 같이 웃을 수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해외봉사단은 하나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개인보단 단체를 생각하고, 개인의 이익보다는 단체의 행복을 위해 힘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자랑 숙명여대

 

2014년에 주희씨는 학년 자격을 충족하지 못해 더 이상 해외봉사를 나갈 수 없다. 그래도 인근 노인센터와 입양원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졸업 후에는 NGO나 국제기구 쪽으로 진출해 더 높은 차원의 해외봉사를 할 수 있는 길을 찾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제게 숙명여자대학교는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는 고마운 존재예요. 누구나 해볼 수 없는 ‘해외봉사’라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주었죠. 숙명이 아니었다면 쉽게 이루어질 수 없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과거보다 더 성숙해진 제 모습을 만들어 준 숙명에게 저도 미래에 훌륭한 여성리더가 되어 숙명을 빛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