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最大) 여대에 숙명의 DNA를 전파하다 - PNU 파견 연구원이 쓴 현지 체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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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보도일자 2016-06-08
우리대학은 지난 2014년 사우디아라비아에 소재한 세계 최대 규모의 여자대학인 프린세스 노라 빈트 압둘 라흐만 대학(이하 PNU)과 종합적인 교육행정컨설팅을 수행하는 행정서비스 협력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우리대학 국제협력팀 소속 교직원 4명은 지난 2014년 12월부터 올해 초까지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되어 학생지원서비스 및 리더십프로그램들을 전파하고 돌아왔다. PNU가 새로 시작한 학생 앰배서더 제도와 글로벌라운지 공간 마련, 원스톱서비스센터를 통한 학사행정업무 효율화, 적극적인 여성취업활동을 보장을 위한 취업경력개발센터 설치 등은 바로 1년 넘게 현지에서 불철주야 업무에 매진한 우리대학 교직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에 이들의 노고를 일부나마 알리고자 PNU컨설팅을 담당했던 국제협력팀 진선주 연구원의 체류기를 이곳에 올린다.
지난해 PNU에 파견된 우리대학 교직원들과 국제행사 참석 차 사우디를 방문한 황선혜 총장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 사진 좌측 첫 번째가 진선주 연구원이다.
“어? 생각보다 얼굴이 안 탔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년 반 정도 사는 동안, 한국에 들어 올 때마다 우리대학 교직원 선생님들께 들은 말이었다. 섭씨 50도까지 올라가는 사막이 있는 더운 나라이니 우리가 새카맣게 타서 돌아올 것을 상상하신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 팀원 중 일부는 건강검진 결과 비타민D 결핍으로 한국에서 주사로 보충하고 다시 출국해야 했다고 하면 믿어줄까.
나 역시 그만큼 사우디아라비아라는 나라에 대해서 무지했고 제로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무관심했었다. 집 앞 마당에서 석유가 펑펑 나고, 낙타를 타고 사막을 이동하는 일부다처제의 나라. 농담 같지만 실제로 사우디 사람들이 외국인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라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왔다고 하면 ‘어마어마한 부자’ 아니면, 문명화되지 않은 ‘미개인’라는 지독히도 오래도록 떨어지지 않는 편견의 딱지와 지금도 그들은 싸우고 있다.
사우디는 아직 일반 관광이 개방되지 않은 비즈니스가 아니면 출입할 수 없는 닫힌 국가이다. 2013년 사우디 역사상 처음으로 관광사업 계획이 발표되었으나 아직 일반인에 대한 관광은 시행되지 않고 있으며, 예외적으로 무슬림에게만 종교 순례를 위한 하지(Hajj)비자가 허용되고 순례 해당 도시에 한해서 개방하고 있다. 나도 사우디로 파견이 결정되고 출발 전 사전조사를 하면서 자료가 너무 없어서 깜짝 놀랐었다.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나라인 것이다.
나를 포함해 숙명여대 국제협력팀의 교직원 4명은 대학 시스템 구축 및 컨설팅이라는 임무를 띠고 지난 2014년 말 프린세스 노라 빈트 압둘 라흐만 대학이라고 하는 부르기에도 숨 가쁜 곳으로 파견 근무를 떠났다. 세계 최대 여대라고 하는 PNU에 대해 잠깐 소개하자면 그 면적이 8백만 평방미터로 대학 캠퍼스가 여의도의 약 2.8배라고 할 수 있다. 캠퍼스가 워낙 크고 더운 날씨 때문에 바깥에서 장거리를 걷는 것이 힘들다보니 캠퍼스 내에 무인 메트로 4개 라인이 매일 60,000명의 학생과 5000명의 교직원들을 실어 나른다. 대학 캠퍼스 안에 4개의 지하철 호선과 14개의 역이 있는 셈이다. 직원이나 교수들이 급하게 캠퍼스 간 이동할 때를 대비해 교내 골프카트도 항시 대기하고 있다. 참고로 사우디 정부는 여성이 운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데 교내 골프카트는 예외인지라 운전하는 여성 스태프들이 꽤나 엑셀을 밟으며 신나게 달려서 탈 때마다 손잡이를 잡은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가곤 했다.
숙명여대 발(發) 교육한류 꿈꾸다
이 거대한 규모의 학교에 비하면 너무나 아담한 숙명여자대학교와의 특별한 인연은 PNU 총장단이 글로벌 파트너십 구축을 목적으로 2013년 한국 유수의 대학들을 방문했을 당시, 숙명여자대학교의 학생 서비스 프로그램에 감동해 숙명여대와 단독으로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시작됐다. PNU 후다 빈트 모하마드 알 아밀 총장은 이전에도 경험한 해외 컨설팅의 시행착오를 고려하여 숙대 팀이 PNU 캠퍼스 내에 체류하면서 그곳의 교수, 직원, 학생들과 만나고 일하고 생활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라는 특수한 문화적 환경을 직접 체득하고 이해한 후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안해 주기를 원했다. 그렇게 우리 팀은 국내 최초 교육 행정 시스템 수출이라는 사명을 안고 서수경 대외협력처장님의 연구 책임 아래 120배가 넘는 규모의 대학교를 컨설팅하고자 사우디 수도인 리야드로 떠났다.
리야드 킹 할리드 공항에 내리자마자 학교에서 받은 히잡을 서툴게 뒤집어 쓰고 치렁치렁 발에 감기는 아바야를 휘날리며 도착했던 그곳에는 숙소도 뭐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인내하는 법, 포기하는 법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유를 갖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게 될 수천만 스승님들과 기도시간을 알리는 신비한 소리 뿐이었다.
그곳에서 지냈던 16개월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정초에 갑작스럽게 압둘라 전 국왕이 타계하면서 왕세자 살만이 왕위를 물려받으며 왕위 승계 기념으로 통 크게 전 국민에게 그 달 월급 3배, 학생들에게는 용돈 3배를 쏘시며 놀래키더니(사우디 대학생들은 학업을 하는 동안 매달 국가에서 용돈이 나온다), 봄이 되자 박근혜 대통령이 리야드 및 중동 4개국을 방문하며 한국에서의 중동 붐이 암시되었다가, 여름에는 메르스 사태가 터지면서 프로그램 차 한국 방문 중이었던 우리는 잠재적 보균자로 격리 아닌 격리 상태로 지내기도 했다.
그곳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우리가 생각했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 상식이라고 여겼던 그 모든 것들은 우리가 사는 환경의 문화적 맥락에서 각자의 머리 속에 만들어진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각 나라의 특수한 문화와 환경을 체득하기 위해 나라마다 지역전문가를 파견하는데 아랍의 문화적 특성상 현지인들과 업무적 관계 이상으로 가까워지긴 쉽지 않고 특히나 남녀의 생활이 철저히 분리된 문화에서 사우디 여성들의 삶은 베일 속에 꽁꽁 싸여 있다. 하지만 우리 숙명여대팀은 PNU 총장님과 교수님들, 학생들의 배려와 특별한 애정으로 ‘돌봄’을 받아 사우디의 다양한 가정집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그녀들과 가족처럼 지내며 미지의 세상에서도 그녀들의 ‘집밥’을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문화적 차이를 경험하다
#종교
그 어느 아랍국가보다도 신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우디 사람들은 매일 다섯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를 한다. 이렇게 율법을 잘 따르니 신께서 유전을 내리셨나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도 성실하게 기도를 한다. 이 시간에는 모든 할일을 멈추고 기도에 임하기 때문에 쇼핑몰에서도 일제히 모든 샵의 셔터가 내려가고 점원들과 손님들은 기도실로 향한다. 기도시간은 대략 30분 정도인데 할일이 없는 우리는 초반에는 커피숍에 앉아 있거나 (물론 주문은 할 수 없다. 기도 시간에 상행위는 불법이며 도처에 종교 경찰이 단속 중이다.) 벤치에 멍하니 앉아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지를 생각하곤 했다. 예외적으로 대형 마트는 기도 시간 전에 들어가게 되면 기도 시간 동안 마트 내에 머무르며 구경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단, 계산은 할 수 없고, 셔터가 내려가기 때문에 중간에 마트 밖으로 나갈수도 없다.) 우리는 기도시간 알람앱을 깔아놓고 (심지어 기도시간은 매일 조금씩 바뀐다.) 기도시간 5분 전이 되면 마트를 향해 전력질주해서 닫히는 셔터 밑으로 몸을 날리곤 했다.
사우디는 100% 무슬림 국가이다. 사우디 내에서는 종교의 자유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슬람의 가르침에 의하면 인간은 종교를 선택할 자유의지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사우디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종교를 존중한다. 그들에게 포교 행위는 금지되어 있지만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은 자유인 것이다. 참고로 나는 종교가 없는데 사우디에서는 무슬림이 아니라면 종교가 없는 편이 덜 적대받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었다. 나를 제외한 우리 팀원들은 모두 기독교였는데 한번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던 누라라는 PNU 직원이 우리에게 종교가 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다른 팀원들은 기독교라고 밝혔고 누라는 예상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기독교는 무슬림과는 믿음이 다르지만 사실상 구약을 나누는 형제 종교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같은 질문이 나에게 왔다.
“What about you? What’s your religion?” (그럼 넌? 넌 종교가 뭐야?)
“Me? I have no religion.” (나? 난 종교 없어.)
그런 것이 가능한지 몰랐다는 듯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WHAT?!! No religion?!?” (뭐? 종교가 없다고?)
“Yeah, no religion, nothing.” (응, 없어.)
마치 성별을 물었는데 없다고 대답한 사람을 보듯 그녀는 충격적인 표정으로 잠시 멍하게 있더니 나에게 엄청난 질문을 던졌다.
“Why live?”
그렇다.
나는 왜 사는가.
나는 한 마리의 길 잃은 어린양의 심정으로, 충격받은 그녀의 얼굴을 더 충격받은 표정으로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인배
나눔은 그들에게 일상 그 자체이다. 그곳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은 ‘좋은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었다. 집집마다 메이드와 운전기사가 있는 사우디에도 가난한 사람들은 있는데, 그들이 호의를 받을 때 딱히 고마워하지 않고 당연히 여기는 듯한 태도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가진 자가 부족한 자에게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봉사나 자선활동 역시 칭찬받을만한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생활이다. 인정도 많아서 사무실에 늘 8절지만한 은쟁반이 돌아다닌다. 집에서 간식을 가져와서 늘 나눠먹는다.
옛날에 우리 어릴 땐 동네 슈퍼에서 잔돈이 몇십원 남으면 주인 아저씨가 잔돈을 안주시고 대신 껌이나 사탕을 끼워주시곤 했는데 사우디도 비슷하다. 슈퍼에서 잔돈이 없으면 껌 하나 끼워 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그냥 없다고 안주기도 한다. 처음엔 당당하게 잔돈을 떼 먹는게 황당했는데, 내 쪽에서 돈을 낼 때 좀 모자라도 그냥 됐다고 다음에 달라고 한다.
한번은 숙소 근처에 새로운 식당이 오픈을 해서 뭔가 싶어서 기웃거렸더니 주인이 보고는 들어와서 먹으라고 하는 거였다. 마침 현금이 없었는데 카드도 되냐고 했더니 안 된다고 하길래 다음에 오겠다고 했더니, 그냥 먹고 돈은 다음에 가져오라는 거였다. 처음 보는 우리가 어디 사는 줄 알고 통 크게 외상을 주다니 너무 오랜만에 받아보는 동네 아저씨 인정이 감격스러웠다. 몇 만원어치 부페식 식사를 하고 돈도 안내고 배를 두드리며 숙소로 돌아가는데 동네사람이 다 된 것 같아서 뿌듯했다.
#남녀칠세부동석
사우디는 철저하게 성별분리를 실천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분리되어 교육받기 시작하고 특히 여성들은 가족, 친지를 제외한 남자에게는 머리카락을 보여선 안 된다. 이 성별분리는 사회 전반의 모든 분야에서 이뤄지는데 은행도 남성용과 여성용이 분리되어 있는 식이다. 여성은행의 경우 모든 직원은 100% 여성인데 보안과 경비를 담당하는 여성직원을 채용하는 것이 여의치 않아서 내부 직원의 남편을 보안요원으로 고용한다고 들었다. PNU 역시 100% 여성 캠퍼스이다. 캠퍼스 내 대학들이 땅위에 세워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전체 캠퍼스가 2층에 있고 그 아래 1층에서 남성 직원들이 분리되어 일하고 있다.
사우디는 날씨의 영향으로 일하는 시간이 짧은데 학생 포함 전 직원은 오후 4시까지는 학교를 완전히 비워야 한다. 그러면 6시에 남성 직원들이 올라와서 관리, 유지 작업을 시행한다. 교수진은 대부분 여성이지만 남자교수도 있는데 이 경우는 비디오 화면을 통해 수업을 진행한다. 이 때 여학생들은 남자교수의 얼굴을 볼 수 있지만 남자교수는 여학생들의 얼굴을 볼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리야드를 방문했을 때 PNU 방문을 추진했다가 남자 보디가드가 교내에 들어오는 것이 금지되어 무산되었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사실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사우디는 전 세계 유일한 연애가 불법인 국가이다. 남녀의 데이트 장소가 될 수도 있는 영화관, 극장, 콘서트홀 등의 오락시설은 모두 불법이며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 가정집에는 남자들이 드나드는 문과 장소는 따로 있고, 우리가 초대되어 가정집을 방문할 때 남자들은 집을 비우거나 자리를 피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군데 남녀가 함께 일하는 예외인 곳이 있는데 바로 병원이다. 목숨을 좌우하는 곳에서 철저한 남녀분리가 여의치 않아서인지 병원에서는 남자의사, 여자간호사가 함께 일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의학 쪽이 여자들에게 최고로 인기 있는 직업군이었다.
우리대학 컨설팅으로 인해 새로 생기게 되는 창업 및 취업지원센터와 원스톱서비스센터
사우디화와 여성교육 활성화
기존 사우디 컨설팅의 문제점은 세계적 컨설팅 업체가 아무리 완벽한 컨설팅을 실시하더라도 컨설팅 팀이 떠나면 그 뿐이라는 점이었다. 사우디는 사실상 대부분의 사업 실행을 외주에 의존하고 있어서 사우디인이 사업과 실행의 주체가 되자는 Saudization(사우디화)이 사회 전반적으로 심각한 과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점을 감안해 1차 프로젝트였던 학생서비스 부분을 개선하면서 PNU의 교수단을 숙명여대에 직접 초대했다. 현장에서 학생서비스 벤치마킹을 눈으로 보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단순히 시스템을 가르쳐줄 수 있지만 직접 보고 운영 주체가 되길 바랐기 때문에 과감하게 그들을 현장으로 데리고 와 리더십 트레이닝을 수행했다. 하지만 사우디는 여성이 여행을 할 때 남성 가디언이 동행해야 하는 나라다. 총 20명의 교수들이 왔는데 이들의 남편, 남동생, 자녀들까지 함께 오면서 예상외로 그룹이 너무 덩치가 커져 프로그램 내내 팀원들이 허덕였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PNU 교수들의 변화를 대하는 자세는 이 리더십 트레이닝 프로그램 전과 후로 나눠진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들은 한국에서 본 것을 흡수해 고국에 돌아가서도 우리와 함께 변화에 앞장서 주었다. 이에 박차를 가하여 PNU 재학생 그룹 역시 한국에 초대해 숙명여대의 리더십그룹제도와 글로벌 탐방 프로젝트를 벤치마킹한 국제 프로그램 1기를 런칭했다. 이 그룹들은 지금 우리를 대신해 취업경력개발원와 원스톱서비스 등 그동안 전수해 준 시스템을 도입하는데 맹활약 중이다. 2차 프로젝트였던 미술대학 교과과정 개편 역시 1차에서 한국에 왔던 그녀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우리들의 동료, 친구, 가족이 되어주지 않았다면 너무도 외로운 싸움이지 않았을까.
기고: 국제협력팀 진선주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