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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꽁초가 제 모습같아 시작하게 됐죠" 정크아트 공모전 대상 수상한 '꽁초 아티스트' 김근아씨

  • 조회수 6696
  •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보도일자 2012-12-11

김 씨는 이른바 ‘정크아트’ 아티스트다. 정크아트는 말 그대로 폐기물이나 쓰레기를 활용한 예술작품이다. 가끔 이색 작품으로 미디어에 소개되기도 한다. 흔치 않은 재료를 활용하기 때문에 비주류 장르라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강한 개성을 자랑하는 작품이 많다. 김 씨는 그중에서도 가장 희귀한 아이템인 담배꽁초를 이용하는 아티스트다.

  

김 씨가 처음부터 담배꽁초로 작품을 만든 건 아니다. 학부생 때 연애도 안 되고 삶도 무료한 시기가 있었다. 방황하며 술과 담배를 벗 삼아 지내던 그 때, 한 수업에서 교수님의 과제가 떨어졌다. “사각의 캔버스에서 벗어나라” 캔버스에서 눈을 돌려보니 주위에 보이는 건 술과 담배 뿐. 우선 담배곽으로 작품을 만들어봤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데코레이션으로 몇 개 쓴 담배꽁초가 오히려 그럴 듯 했다. “담배꽁초야말로 정말 쓰레기 중의 상 쓰레기잖아요. 생긴 것도 그렇고 흔하기도 하고. 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시작하게 됐죠”

 

  

주위에선 의문의 시선을 보냈다. 학생들은 속칭 ‘담배냄새 쩌는’ 김 씨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교수들은 “꼭 굳이 그걸로 작품을 만들어야겠니?” “다른 거 알아보지 그러니”라며 우려 섞인 조언을 건넸다. 그런데 그중 단 한명 이석주 교수가 적극 추천했다. “색다른 시험이네, 계속 해봐”

  

우선 꽁초를 구하는 것이 일이었다. 주변에서 쉽게 보이는 꽁초지만 막상 모으려니 시간이 많이 들었다. 자신이 피는 담배는 물론이고, 주변의 흡연자들로부터 ‘꽁초 동냥’을 다녔다. 선후배의 남자친구들이 주요 고객이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다니는 길에 보이는 꽁초들도 주으러 다녔다. 비닐백에 집게를 들고 꽁초를 줍는 청년이 아름다웠나보다. 어느 날 한 노점상 주인은 김 씨를 불러 “청년이 고생하네”라며 2000원짜리 닭꼬치 하나를 건넸다. 김 씨는 맛있게 받아 먹었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도 “꽁초는 얼마씩 받냐”며 헛물을 켰다.

 

  

그렇게 모인 담배는 김근아 씨의 손에 의해 하나하나 아름다운 예술작품이 됐다. 꽁초에 항균제를 뿌리고 햇볕에 곱게 말린 다음 색을 칠하고 다시 한번 말리는 과정을 거친 뒤 아이소핑크라고 불리는 판에 밑그림에 따라 붙였다. 다 붙인 뒤엔 그 위에 본드를 발라 말리는 과정을 반복했다. 보통 한 작품을 만드는데 꽁초는 약 9천개, 시간은 한달 정도 걸린다.

 

“꽁초작품이 한때의 특이한 경험이라고 생각했어요. 졸업작품은 평범한 그림을 내려고 했죠. 그런데 어느날 교수님이 부르셔서 ‘니가 캔버스에 그리는 그림과 담배꽁초 작품을 직접 비교해봐라’라고 하시는 거에요. 꽁초 작품에서 보이는 열정이 안 보이신다는 뜻이셨죠. 그때부터 꽁초 작품에 집중했고, 대학원에 올라와서도 계속 하고 있어요”

  

김 씨는 지난 10월 환경부가 주최한 정크아트 공모전에서 ‘슈렉, 괜찮아’라는 작품으로 대상을 차지했다. 심사위원들은 담배꽁초를 활용한 독특한 작품에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1차 사진 심사에서는 좋은 평을 받지 못했지만, 2차 실물 심사에서 보인 비주얼 충격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사실 큰 기대는 없었어요. 지난 대회에서 나를 위한 공모전이라며 큰 기대를 가졌지만 입선도 못했거든요. 이건 분명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나봐요”라며 웃었다.

 

  

이쯤에서 밝히는 김근아 씨의 비하인드 스토리. 김 씨는 원래 한양 공대생이었다. 2학년 1학기까지 다니다 적성에 맞지 않아 중퇴했다. “그래도 나름 명문대생인데 집에서 반대가 심했죠. 그런데 방황을 심하게 하다보니 부모님도 ‘니가 원하는 것을 하라’고 하셨어요” 김 씨는 혼자 미술학원을 다니며 수능을 준비해 2007년 숙명여대 회화과에 입학했다. 당시 나이가 24살. 동기들보다 4살이 더 많았다. 김 씨는 “공대 여대생은 두 종류가 있어요. 공주가 되거나, 남자가 되거나. 저는 후자였죠. 처음엔 여대생밖에 없는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숙대에 정말 잘 온 것 같아요. 교수님들도 다들 점잖으시고 잘해주시고. 동기 선후배들도 너무 좋고. 6년을 다니다보니 이젠 캠퍼스에 남자가 보이는게 더 신기해요”라고 말했다.

 

  

김 씨는 이번 공모전에서 탄 우승상금으로 그동안 자신을 도와준 지인들에게 공치사하고 남은 건 여행자금으로 남겨뒀다. 6년 넘게 공휴일 빼고 거의 매일 학교에서 살다보니 좀 쉬고 싶다고 한다. 졸업하면 개인 작업실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작품활동을 하는 것이 꿈이다. “그게 제 꿈이긴 한데, 잘 안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해봐야죠. 플랜B는 만들지 않을래요. 당장 졸업작품 만들기도 급한데” 김근아 씨가 인생을 사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