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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휘원에서 순헌황귀비의 창학정신을 되새기다”

  • 조회수 3117
  •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보도일자 2020-08-24

우리대학 강정애 총장이 지난 818일 숙명의 창학자인 순헌황귀비 묘역이 있는 영휘원을 참배했다.

 

강 총장은 이날 영휘원과 숭인원을 방문해 순헌황귀비 엄씨와 손자인 이진의 무덤에서 창학자의 정신을 기리는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영휘원 정자각에서 순헌황귀비에게 참배하는 강정애 총장

 

우리대학의 전신인 명신여학교를 1906년 창학한 순헌황귀비 엄씨는 8세에 궁에 입궐해 명성황후의 시위상궁이 됐다. 을미사변으로 일본군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아관파천 때 고종을 모신 뒤 후궁이 되어 영친왕을 낳았다.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풍전등화와도 같았던 대한제국 황실은 하루빨리 부강한 국가를 건설해 국난을 벗어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순헌황귀비는 나라의 부강을 위해선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고, 여성이 남성과 마찬가지로 교육을 받아야 자강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한제국 황실의 기본재산을 하사해 양정의숙과 진명여학교, 그리고 명신여학교를 설립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여성사학이 탄생한 것이다.

이어서 1912년에 재단법인 숙명학원이 인가되었다. 당시 신문에 실린 명신여학교 창립청원서에는 여성교육에 대한 순헌황귀비의 의지가 잘 나타나 있다.

 

전국의 백성이 2천 만이나 노약백치가 수천수만이고 여자가 반 수 이상이 넘는다. 여자의 총명함과 뛰어난 재주가 남자 못지않으나 깊은 규방에 갇혀 꽃다운 나이에 허송세월만 하고 있어 인사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문명통치에 가장 큰 결점이다. 나라의 벼슬아치와 백성은 남녀가 같다. 본인 등이 이러한 세상의 흐름을 보니 여자교육이 시급하기 때문에 총명한 황족여자를 모집, 교육하여 인재를 배양하고자 하니 특별히 인가해 달라

 

- 황성신문 1906. 5. 26.

 

순헌황귀비는 1911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위패는 종로구 궁정동에 있는 칠궁에 봉안되고, 시신은 영휘원에 안장됐다. 영휘원 비각에는 순헌황귀비의 행적을 기록한 비문이 세워졌다.

 


순헌황귀비 능과 정자각 및 비각

 

 

 

강정애 총장은 “114년 전 여성교육을 통한 구국이라는 창학정신으로 숙명을 세운 순헌황귀비의 정신은 현재까지 이어져 우리대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2018순헌황귀비길 명예도로 명명조성, 이번 영휘원 참배 등을 통해 앞으로도 숙명의 전통과 역사를 되새기는 기회가 구성원들에게 지속되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