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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대학이 이 안에 있죠” 국내 최초 MOOC 캠퍼스 출범시킨 역사문화학과 김형률 교수

  • 조회수 10797
  •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보도일자 2014-01-29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s)은 일종의 지적인 개방을 하는 겁니다. 대학교육의 민주화라고도 합니다. 미래의 대학이 이 안에 있어요”

지난 1월 24일(월) 우리대학 새힘관 연구실에서 만난 김형률 교수는 MOOC을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시작돼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세계로 확산된 대학 교육운동인 MOOC은 대규모 온라인 개방 수업을 뜻하는 말이다. 아이비리그를 위시한 세계 명문대의 수업을 온라인으로 듣고 수료증까지 취득 할 수 있다는 MOOC의 출현은 전통적 방식의 대학 수업이라는 울타리를 일순간 무너뜨렸다.

 

고등 지식습득의 장벽이 사라지고 인터넷 접속만 되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은 엄청난 파급효과를 낳았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MOOC 사이트인 코세라(Coursera)에는 2년도 채 안돼 600만명이 넘는 수강생이 등록했고, 인기있는 강좌의 경우 수 만명이 동시에 들을 정도다. 급기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비싼 대학등록금을 낮추기 위한 혁신적인 방법으로 MOOC를 공개 지지했으며 빌게이츠 재단도 MOOC을 연구하는 연구소를 세워 MOOC 수업제작에 지원금을 주고 있다. 바야흐로 MOOC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국내 최초, MOOC 활용한 온라인 수업 시작

 

이같은 세계적 트렌드를 받아들이고자 김 교수는 지난 1월 국내에선 최초로 MOOC을 활용한 온오프라인 혼합수업인 펭귄스텝 MOOC 캠퍼스 1기를 출범시켰다. 세계에서 가장 큰 MOOC 제공 회사인 코세라와 유다시티(Udacity)에서 1월에 개강하는 수업 3개를 택해 숙대생들과 외부인들이 함께 수업을 하는 것이다. 250여명 가운데 50여명은 숙대생이고, 나머지는 교사, 학생, IT업계 관계자, 기업 인사담당자 등이다. 6일 열렸던 캠퍼스 오리엔테이션에선 특히 중앙고, 선린인터넷고 등 인근 고교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띄였다.

“MOOC에 대한 수요가 가장 높은 층이 바로 중고생들이에요. 미국에서 대학을 지원할 때 중요한 스펙 중 하나로 MOOC수료증을 꼽기 때문이죠. 미리 대학 수업방식을 겪어봤다는 경험 자체를 하나의 경쟁력으로 보는거에요”

실제로 현재 MOOC 캠퍼스에서 진행되는 수업 중 하나인 웨슬리안 대학의 ‘How to Change the World’ 수업을 위한 페이스북 모임에 들어가보니 온라인 과제 제출자의 절반 이상이 고등학생들이었다. “MOOC수강생 중 60% 이상이 대학 이상 졸업자이지만 실제로 수료증까지 취득하는 ‘우등생’은 고교생들”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우리대학에서 열렸던 MOOC 캠퍼스 개원식 현장  


이제 첫 발을 내디딘 셈이지만 김 교수는 고무적이다. 그는 “처음 MOOC을 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교육 사전준비만 3주를 했고 현재 수업 중인데 수강생들의 참여가 원활히 이뤄진다”며 “호주인과 브라운대학 재학 중인 유학생이 스스로 숙대생들의 숙제를 온라인으로 문법교정해주고, 따로 구성한 모임에서는 영어공부를 병행할 정도”라고 웃으며 말했다.

 

물론 MOOC의 정착에는 앞으로 산적한 과제가 있다. 가장 큰 걸림돌 중의 하나는 한국 특유의 교육문화다. 김 교수는 “MOOC은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의견공유, 주도적인 학습 등이 핵심인데 우리나라에서 주입식 교육만 받던 학생들이 스스로 해야 하는 환경에 노출되면 어쩔 줄 몰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대학들의 외면도 지적했다. 등록금을 내지 않고 대학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대학의 존립기반 자체를 흔드는 것과 다름없다.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대학들이 논의를 꺼리는 입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조선시대 말 쇄국정책처럼 걸어 잠근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라며 “세계적 흐름에 도태되지 않으려면 우리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형률 교수와 펭귄스텝의 제자들. MOOC 캠퍼스 출범의 주인공들이다.  



방황하던 고등학생에서 MOOC 전도사가 되기까지

 

김형률 교수는 범상치 않은 학창시절을 보냈다. 중앙고를 힘겹게 졸업하고 고려대 사학과에 입학했지만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수업보다 읽고 싶은 책을 읽고 혼자 사색하는 것을 즐겼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학교를 가는 의미를 찾지 못하고 출석일보다 결석일이 더 잦았던 김 교수는 결국 대학마저 중퇴한 뒤 독일 마르부르크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마르부르크대에서 다시 학부부터 시작해 유럽사를 전공하고 빈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93년 귀국했다. 북한문제 연구소로 유명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지내면서 몇몇 대학에 출강을 했다. 김 교수는 “당시 연구소에는 대부분 정치학을 전공한 강사들이 매일 모여 신세한탄도 하고 연구활동도 했다”며 “‘지금은 지하에 있지만 언젠가 부글부글 끓고 일어나 바깥으로 나갈 것’이라는 뜻으로 '마그마'라는 모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멤버가 화려하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 호주대사를 역임한 김우상 연세대 교수, 유현석 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신욱희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유석진 서강대 정외과 교수,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 인천대 이호철 교수 등이 이곳 출신이다.

 

1995년 숙대에 온 뒤 약 8년간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서양사를 가르쳤던 그는 2002년 연구년을 맞아 하버드대 유럽학연구소에 연구교수로 갔다가 커다란 문화적 충격을 겪었다. “강의실에 갔는데 모든 학생들이 다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거에요. 그리고 인터넷으로 필요한 모든 자료를 찾고 그걸 토대로 공부하는 겁니다. 그때까지 전 컴퓨터도 할 줄 몰랐는데 저를 이상하게 바라보더군요. 그때 ‘아, 내가 시대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너무 모르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터넷에 최고의 지식정보가 축적되고 있는데 이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안되겠다고 본능적으로 느꼈고, 그때부터 각종 정보들을 큐레이팅하기 시작했습니다” 귀국한 뒤 김 교수는 자신의 수업에 인터넷에 있는 각종 공개교육자원(OER/Open Educational Resources)를 이용했고 2년 전부터 제자들과 함께 MOOC 공부모임인 펭귄스텝(사이트 클릭)을 만들고 교육혁신의 싹을 틔웠다. 오늘날 MOOC 전도사가 된 그의 탄생 배경이다.



 

한국형 디지털 휴머니티즈 센터 설립으로 교육혁명 주도

 

김 교수가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또 있다. 국내최초로 MOOC을 중심으로 모든 전공의 지적자료들을 큐레이팅하는 연구소인 코리아 디지털 휴머니티즈 센터(Korea Center for Digital Humanities at Sookmyung Women's University·KCDH) 설립이 그것이다.

 

디지털 휴머니티즈 센터는 디지털 학문자료와 인터넷 상의 지적 도구 사용법을 연구하고 최근 20여년간 북미와 유럽이 축적한 학술적 빅데이터와 공개교육자원들을 체계적으로 수집, 분류, 정돈해 종국적으로는 전공별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역할을 할 예정이다. 아울러 3월 초 우리대학 학부생 인턴 10명을 선발해 전공별 큐레이터를 양성해서 영어자료로 이뤄진 웹사이트를 만들어 누구나 수업과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려 한다. 중고생들도 이용할 수 있는 주제별 E-Book 제작, 각종 인터넷도구 설명영상제작, 영문 저널 발간 등도 계획 중이다. 김 교수는 “현재 의상학과 채금석 교수가 한국 의상의 역사를 전세계에 소개하는 토종 MOOC 수업을 개발 중인데 코세라 사이트에 등록하는 것이 당면과제”라며 “다른 대학처럼 폐쇄된 한국형 MOOC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세계적인 메이저 MOOC 프로바이더에 합류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앞으로 당분간 KCDH의 설립과 MOOC 캠퍼스 운영 등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연구소는 이미 관련 예산을 확보했고 함께할 교수들과 박사급 연구원도 물색 중이다. 공간 문제는 3월까지 해결될 것으로 내다봤다. 오는 9월엔 조선일보와 함께 MOOC을 주제로 IT 국제컨퍼런스를 열고 가능하면 빌 게이츠, MIT 총장 등을 초청할 계획이다. 여기에 강의까지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눈코뜰 새 없이 바쁘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맨땅에 헤딩을 3번 정도 했습니다. 독일 유학 때도 무작정 떠나 대학을 처음부터 다시 다녔고, 지난 10년 간은 인류의 지적유산이 인터넷 속에 축적되는 과정을 홀로 추적했습니다. 아마 이번 연구소 설립이 마지막일거에요. MOOC을 통해 한국이 지적인 개방을 하는 시기가 빨리 도래했으면 좋겠습니다. 디지털 휴마니티즈는 인류문명사적 관점에서 인류의 문자창조, 금속활자 발명에 이은 세번째 지식전달 혁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