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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코피크 그 정상에 오르다’ 히말라야를 정복한 장민경 학생

  • 조회수 2558
  •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보도일자 2015-03-23

카페에 앉아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이 더 어울리는 25살의 여대생, 장민경 학생의 히말라야 등반은 우연히 만난 원정대 모집 공고에서 시작되었다. 졸업을 앞두고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었다는 그녀에게 히말라야는 그렇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인생에 다시는 없을지도 모를 기회라는 생각에 주저하지 않고 지원을 결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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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이라고는 북한산에 오른 것이 전부였던 제게 히말라야는 큰 도전이었죠”


“TV에서만 보던 만년설을 제 눈으로 보고, 또 직접 만질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설레기만 했어요” 하지만 그 설렘은 원정대가 결성되고 시작한 첫 교육에서 무참히 사라져 버렸다. 만경대 릿지 등반을 시작한지 10분 만에 홀로 낙오되어 주저앉고 만 것이다. 등반 코스를 마치 집 앞 마당처럼 뛰어다니는 전문 산악인들 틈에서 그녀는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관심학생 1호’가 되었다고.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때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죠” 


모두가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체력의 한계도 히말라야를 향한 그녀의 열정을 막지 못했다. 그날부로 집 앞 헬스장으로 달려가 운동을 시작한 그녀는 주말마다 홀로 산을 오르며 히말라야를 향한 의지를 다졌다.


그렇게 3개월의 노력 끝에 지난 2014년 10월 31일, 드디어 장민경 학생은 히말라야 체르코피크를 향해 첫 발을 내딛었다. 인천에서 카트만두로 출발, 카트만두에서 샤브로베시까지 차량을 통해 이동하여 다시 랑탕(3,430m), 강진곰바(3,830m)를 거쳐 해발 5,742m의 체르코피크를 찍고 돌아오는 결코 짧지 않은 15일의 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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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했던 것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만만치 않더라고요”


걱정과 설렘을 안고 체르코피크 정상을 향해 등반을 시작했지만 히말라야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등반 내내 입에 맞지 않는 음식 탓에 그녀의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갔다. 장민경 학생은 강진곰바에서 베이스캠프를 향해 올라가던 날을 특히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날도 그녀는 감자 한 개로 배를 채우고, 온몸으로 강풍을 견뎌냈다. 세찬 바람 속에서 한발 한발을 내딛기를 몇 시간째, 캠프 도착을 1시간여 앞두고 결국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먹은 것이 없으니 힘을 내고 싶어도 몸이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곧 날이 어두워질 텐데 이러다 얼어 죽는 것은 아닐까 눈앞이 캄캄해졌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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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혼자 절망에 빠지려던 찰나, 그녀 앞에 후발대로 출발했던 동료들이 나타났다. 모두들 할 수 있다고 한마음으로 그녀를 응원해주었다. “강사님의 조언처럼 힘들다는 생각을 버리고 오직 호흡에만 집중하며 천천히 발을 내딛었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쓰러져 있던 제가 걷고 있었죠”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던 그녀는 “저 멀리 온통 하얗게 물든 만년설 속에 개나리처럼 피어있는 텐트를 보고 이제 살았다 싶었죠”라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렇게 동료들의 격려와 함께 그녀는 무사히 4,800m 고지의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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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고비를 넘기며 도착한 베이스캠프에서 그녀는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으며 정상을 향한 체력을 비축했다. 고소적응 훈련과 설상등반 훈련 등 만반의 준비도 마쳤다. 그리고 하이캠프로 이동하여 체르코피크를 향한 마지막 밤을 보냈다. 가만히 누워있어도 숨이 차오르는 해발 5,200m의 하이캠프에서 잠 못 이룬 긴 밤을 보낸 그녀는 새벽 4시반, 드디어 한국을 떠난지 10일만에 체르코피크를 향한 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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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코피크, 그 정상에 오르다.


어둠속에서 헤드랜턴을 장착하고 걷기를 한참, 계속해서 이어지는 높은 설사면에 적잖이 당황했다는 그녀는 금세 바닥을 드러낸 체력에 고통스러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끌어주던 셰르파 락바가 있어 위기의 순간들을 무사히 극복하고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힘들어 멈추고 싶었지만 옆에서 응원해주던 락바 덕분에 멈추지 않고 걸을 수 있었죠” 


죽을힘을 다해 도착한 정상은 생각보다 시시했다고. 그녀는 “협소한 정상에 놀랐어요. 계속해서 올라오는 사람들 때문에 사진 한 장만 찍고 바로 내려와야 했죠. 이 3분을 위해 3개월 동안 그 고생을 했나 조금 허무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과정이 있었기에 한 뼘 더 성장한 저를 만날 수 있었죠” 라며 웃어보였다. 


“나 히말라야에 오른 여자야”


“가장 큰 수확은 앞으로 살면서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나 히말라야에 오른 여자야’라고 생각하며 씩씩하게 이겨낼 자신감을 얻었다는 거예요”(웃음) 


그녀에게 지난 1년은 그야말로 치열함 그 자체였다고. 인턴생활과 졸업준비 위원장, 그리고 히말라야 등반 준비를 병행하면서는 일 년 동안 집에 들어간 날을 손에 꼽을 만큼 바쁜 생활을 보냈다고 말했다. “지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마다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신 김흥렬 교수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힘들어 멈추고 싶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이제 그녀에게 히말라야는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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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끊임없이 도전하며 인생이라는 여행을 즐길겁니다"


이런 그녀의 도전은 대학교 입학 후 한 달 동안 떠났던 동유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여행이 주는 설렘을 잊지 못해 무작정 떠났다는 제주 올레 길 투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를 시작으로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를 찍고 다시 요하네스버그로 돌아오는 아프리카 횡단으로 이어진 여행은 마침내 그녀를 히말라야까지 오르게 했다. 


“어두컴컴한 밤에 운전하던 차가 사자에 치여 사파리 한 가운데서 낙오가 되기도 했었고, 세계 3대 폭포라는 빅토리아 폭포에 빠졌다 운 좋게 살아나기도 했죠. 아프리카에서는 카드를 잃어버려서 외국인들에게 돈도 빌려 봤답니다” 여행을 하며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의 순간도 겪었지만 그 모든 경험들은 그녀의 일상 속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여행이 제게 준 가장 큰 변화는 마음에 한 층 더 깊은 여유를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태산 같은 일도 티끌로 생각하며 주어진 모든 환경에 겸허히 받아드릴 수 있는 사람에 가까워졌고 앞으로 제 인생을 하나의 여행처럼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그녀는 앞으로 눈앞에 펼쳐질 인생 여행이 참 많이 기대된다며 웃어보였다.

 

끝으로 그녀는 철인 3종 경기부터 몽골 횡단까지 해보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다며, 앞으로도 끊임없이 도전하며 인생 여행을 즐기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지치지 않는 그녀의 열정과 도전을 응원하며, 전 세계에 그녀의 발자국이 닿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