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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의 첫 연극비평집으로 여석기평론가상 수상한 이진아 교수 인터뷰

  • 조회수 8091
  •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보도일자 2014-02-17

“평론집을 낸 뒤 나는 비평가로서 뭐하는 사람인가라고 자문했어요. 내가 혹시 아무에게도 필요 없는 쓰레기를 만든 건 아닐까, 의미 없는 책은 아닌가 싶었죠.”

우리대학 이진아 교수(한국어문학부)는 지난해 초 펴낸 연극비평집「오해」에 대한 질문에 대뜸 이렇게 말했다.


연극평론계에 몸담은 지 10년. 어느덧 중진의 반열에 오른 그가 내놓은 첫 평론집은 기다림만큼이나 기대도 컸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스스로 혹평을 내린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출간을 결정하기에 앞서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책의 서문에서 밝혔듯 “그 누구에게도 무해하지만 또한 그 누구에게도 필요 없는 비평, 누구도 상처받지 않지만 그 무엇도 말하지 않는 비평”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최근 당 해에 가장 활발한 평론활동을 펼친 이에게 주는 여석기 연극평론가상을 그에게 수여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협회는 이 교수의 비평집에 대해 “정치(精緻)한 분석력을 바탕으로 평론가의 주장을 밀어붙이는 단호함이 신선하다”고 비평했다.

수상 소식을 전해들은 지난 11일, 이진아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연이어 내리던 눈이 그치고 겨울햇살이 따뜻하게 비치던 화요일 점심이었다.


 

- 우선 이번에 여석기 연극평론가상 수상자로 선정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감부터 들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대단히 기쁘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이 무겁기도 하네요. 연극평론은 공연과 함께 존재하는데, 요즘은 연극이 힘을 갖지 못하는 시대이니까요. 비평가로서 안타깝고, 또 책임감도 느낍니다.

 

제가 1,2학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뮤지컬을 제외한 순수 연극을 얼마나 봤냐고 물어보면 90% 이상이 태어나서 연극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해요. 또 수업이 진행되면 고전희곡에 흥미를 느끼는 학생들이 생기는데, 그들이 ‘한국에선 이런 작품들을 볼 수 없잖아요’라고 말하기도 해요. 그런데 아니거든요. 세계 어느 곳보다도 연극이 활발히 공연되는 도시가 서울이거든요. 그저 학생들은 어디로 가야 그런 공연을 볼 수 있는지 모르는 것이지요. 연극의 메카라는 대학로에 가도 4, 5년 전부터는 개콘과 같은 꽁트극이 대부분이에요. 그런 것이 먼저 눈에 들어오니 학생들은 우리에겐 그런 공연만 있나보다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런 상황이 아쉽죠.

 

시대적 상황도 그리 좋지 않죠. 현 정부가 문화융성을 강조하지만 제가 느끼는 문화와 정부의 문화는 좀 다른 것 같아요. 국가브랜드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생각을 예술을 통해서 발현시키고 옳든 그르든 표현의 자유가 있어야 하는데 요즘은 그 부분에 있어서 어려운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본 상을 교수님에게 수여하기로 결정한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여석기 평론가상은 우리나라 1세대 전문평론가인 여석기 선생의 존함을 따서 제정된 상입니다. 원로평론가 분들이 그 해에 나온 평론집들을 대상으로 엄격하게 심사하고 선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상식이 14일이라 아직 심사평을 듣진 못했지만 언론에 나온 것을 보니 아마 제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들을 굳게 밀어붙인 점을 좋게 봐 주신 것 같아요.

 

- 수상의 배경이 된 교수님의 연극비평집 「오해」는 어떤 책인가요?

 

「오해」는 제가 러시아에서 연극공부를 하고 돌아온 후 10여 년 간 지켜본 우리의 연극현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크게 4가지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지난 10년간 한국연극의 주요 주제들을 다뤘고 두 번째는 연극행정과 정책에 관련된 생각을 적었습니다. 예컨대 공연기획의 역할이 부각되거나 국공립제작극장이 활성화 되는 등의 바뀐 우리의 제작 환경이라든지, 연극의 종주국인 유럽에서조차 연극 연출시대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상황 등을 진단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고전작품을 현대적인 맥락에서 어떻게 해석하는지 얘기하고, 마지막은 세계연극제들을 둘러보고 느낀 소회를 정리했습니다.

 

개별 공연들에 대한 리뷰는 많이 썼지만 비평집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10년이 되기 전에 책을 내는 것은 위험하고 오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이진아 교수가 수상한 2013 여석기 연극평론가상 수상 트로피)


- 숙대 국문과를 졸업하시고 러시아에서 연극학 박사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국문학도가 러시아로 건너가 연극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희곡문학을 전공했어요. 그런데 공부하다보니 공연학을 모르고선 희곡을 이해하기 어렵더라고요. 연극학 관점에서 희곡을 배우려면 국내에선 한계가 있었고 그래서 러시아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러시아는 19세기 말에 연출가 중심의 연극교육제도를 만든 본고장입니다. 20세기 초까지 예술문화가 융성하던 곳이었고, 근현대 연극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메카와도 같죠. 특히 모스크바가 러시아의 행정수도라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제정 러시아 시대부터 예술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연극원으로 갔습니다.

 

- 사회주의 국가에서 공부하는 것이 녹록치만은 않았을거 같은데요.

 

제가 러시아에 갔을 때는 이미 사회주의는 아니었고 소비에트도 해체된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수교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직행 항공편은 모스크바 뿐인데다가 전화나 인터넷 이용도 거의 안됐어요. 또 전세계적으로 IMF 경제위기가 휩쓸던 상황이라 동네 슈퍼마켓이 텅텅 비어 물자와 먹거리가 부족하기도 했구요. 그런데 6년간 살면서 그게 불편하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사회주의 특유의 좋은 제도들도 많았거든요. 대중교통같은 공공요금이 학생들에게는 거의 무료였고 특히 연극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모든 시내의 공연을 공짜로 볼 수 있었죠. 완전히 표가 다 팔려도 복도에 자리를 까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학생들에게는 자리를 마련해줬어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연극원 재학 시절) 


- 처음 평론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신 건 언제부터인가요?

 

고등학교 다닐 때 친한 친구 아버지가 영문과 교수님이셨는데 극단대표와 연출을 겸임하셨어요. 그 친구 통해 연극 티켓을 많이 얻은 덕분에 대학로에서 살았죠. (극작가였던) 고교 선생님도 저희랑 연극을 보러 많이 다녔죠.

 

그때까지는 그냥 ‘연극이 재밌다’ 정도였는데 대학 들어와서 진지하게 연극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연극반 활동을 하고 서울지역대학극연합(서대극련)에도 참여하면서 배우는 게 많았습니다.

 

사실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우리대학 대학원을 다니면서 동시에 한국예술종합대학 연극학과를 한 학기 다닌 적이 있어요. 여긴 대학원생이지만 거기선 학부생으로 생활한 거죠. 지금이야 전산화가 다 되어있어서 불가능한 일인데, 그땐 제가 말 안 하고 다니니까 그게 되더라고요.

 

한예종 다닐 때는 현장실습을 국립극장의 해오름극장, 달오름극장에서 할 정도로 환경이 좋았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신생학과이다보니 이론적 학문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죠.

 

- 연극배우 쪽으로 나갈 생각은 없으셨나요?

 

1학년 때 딱 한번 배우로 나선 적이 있어요. 그런데 나랑 무대는 잘 안 맞더라고요. 제가 연극을 좋아하는 건 그 작품이 나에게 어떤 말을 거는지 분석하거나 학문적으로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건데 배우나 연출은 좀 다른 영역이니까요. 암튼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건 저랑 안 맞았어요.

 


- 다른 문학 장르와 비교할 때 평론 분야에 활동하시는 분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신문사 신춘문예도 평론분야 수상작을 선정하는데 애를 먹는다는 얘기를 하는 상황이죠.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 숫자로만 보면 평론가는 예전보다 더 많지요.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고 공부하는 분들도 많아졌고... 그런데 전문적인 평론가로서의 자의식이랄까? 그런 것을 고민하면서 평론하는 분들이 적어진 것은 사실이죠.

 

지금은 1인 미디어 시대라고 할 정도로 쉽게 평론을 쓰는 분들이 많아요. 연극도 마찬가지죠. 심지어 극단 사람들도 전문 비평보다 그런 단평을 더 귀담아 듣는 시대에요. 너도 나도 평론을 하는 상황에서 연극 전문지나 일간지에 연극 평론을 기고한다는 것, 비평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스스로 묻죠.

 

제가 평론 활동을 막 시작할 때만 해도 좋은 본보기가 되는 분들이 있었어요. 1980년대 등단 이후 여전히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김방옥 선생, 김윤철 선생 등이 계시는데 그런 분들을 보면 저를 많이 돌아보게 되죠. 30년 넘게 한결같이 현장을 찾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연극평론은 물리적으로 몸이 매일 저녁 연극현장에 있지 않으면 할 수가 없으니까요. 제가 그분들을 보고 자랐듯 제 밑의 후배들에게 제가 귀감이 되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 현재 우리대학 의사소통센터장을 맡고 계십니다. 이곳에서 하는 업무에 대해 소개해주시죠.

 

의사소통센터는 2002년에 출범한 작문능력개발센터가 전신입니다. 같은 해 의사소통능력개발센터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2007년부터 현재의 명칭으로 불리게 됐지요.

2009년엔 대학가에서 교양교육, 인문학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각 대학들이 학부대학이나 후마니타스 칼리지니 하는 교양교육 전담기구를 많이 만들었는데 우리대학도 교양교육원을 신설하면서 의사소통센터가 그 산하에 들어갔습니다.

 

의사소통센터에는 총 23명의 교수님이 계십니다. 글쓰기와 읽기, 발표와 토론, 인문학독서토론 등 총 3개의 교양필수 수업을 담당하는데 초기부터 소속 교수님들이 거의 매주 회의를 하면서 교재를 개발하고 교양교육의 방향성을 잡아 오늘날까지 왔어요. 자랑을 좀 하자면, 우리대학은 교양교육분야의 선도대학입니다. 그 틀이 매우 훌륭해서 많은 대학들이 벤치마킹을 하러 지금도 오고 있어요. 심지어 우리대학 교재를 쓰는 곳도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토론교육 분야는 전국에서 가장 유명하지요. 동서양의 고전을 심도 읽게 읽는 심화과목인 인문학독서토론을 전교생 필수 과목으로 실현한 것도 거의 유일하지요.

 

2011년부터 인문학독서토론을 시작했는데 그때 한 일간지에서 대학 도서관 도서대출순위를 조사한 적이 있거든요? 주요대학들 도서관 1,2위가 대부분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같은 판타지 소설이었는데 우리대학은 일리아드, 논어, 니코마코스 윤리학 같은 서적이 상위권을 차지했어요. 이것이 교양교육의 힘이 아닌가 싶어요.

 

이밖에도 숙명독서토론대회, 숙명토론대회 등 진행하면서 학생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스스로 스터디들을 조직해 세미나나 소모임 활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의사소통센터 산하 리더십그룹 ‘청’이 대표적이죠. 전공지식은 학과에서 가르치고, 전인교육으로서의 기초는 우리가 담당한다고 보면 됩니다.

 

(지난해 5월 열린 숙명토론대회를 마친 뒤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앞줄 왼쪽에서 5번째가 이진아 교수)


- 학생들의 의사소통능력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해야 하는 활동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국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수업을 진행하다보면 우리 학생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독해력과 사고력같아요. 책을 많이 읽긴 하는데 스스로 주도적인 독서를 한다기보다 지도와 가르침에 따라 읽기 때문에 스스로 독해하고 사유하는 능력은 의외로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프레젠테이션을 시켜보면 표현방법이나 테크닉들은 뛰어난데 사실 그런 포장보다 중요한 게 안에 든 내용이잖아요. 그런 건 동서양의 고전 등을 읽으며 이해하고 사유하는 연습이 이뤄지지 않으면 갖추기 힘들어요. 스스로 침잠해서 조용히 사유하는 시간을 많이 가진다면 사고력, 독해력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이런 당부를 하고 싶어요. ‘학교를 다니면서 분명 무언가를 배울 것이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너한테 뭘 가르쳐 줄 거라고 기대하지마라. 학교라는 시스템 안에서 강의를 듣고 과제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네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공부해야 배울 수 있다’라고요.

 

저는 수업시간에 무언가를 가르쳐주려고 하지 않는 편이에요. 제가 가르치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제자들이 알았으면 좋겠거든요. 예를 들어 한국희곡론 수업을 한다고 하면 어떤 작품에 대해 내가 해설하고 언급하는 것은 희곡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배경자료나 디딤돌에 불과한 거죠. 30년 동안 공부하면서 ‘학교 교육이 나에게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대한 느낌대로 강의를 하려고 해요.

 

- 끝으로 후배들, 제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같은 경우 대학생 시절 강의실도 중요했지만 그 바깥의 대학문화에서 얻는 것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진로나 취업에 얽매여 20대에 느끼고 향유해야 할 것들을 못하고 지나치는 게 안타까워요.

그 시기에만 할 수 있는 무모한 도전들, 용기가 필요한 일, 어리석은 일들을 많이 시도해보고 많이 실패해보고 자기 안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봤으면 좋겠습니다. 실패해도 비난하지 않으니까 그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대학생활 보내기를 꼭 당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