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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에도 멈추지 않던 연구 열정...故함시현 화학과 교수 추모 물결

  • 조회수 7906
  •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보도일자 2021-02-18

“시현쌤, 언젠가 농담삼아 제가 크고 멋진 연구소를 지으면 그곳에서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하면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자고 했었죠. 이제는 떠나셨지만 제 마음 속에는 항상 멋있고 열정많은 친구이자 동료, 자매로 남아있을 거에요. 보고 싶습니다.”

 

지난 1월 오랜 암 투병 끝에 타계한 함시현 화학과 교수를 추모하며 김경아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장래가 촉망받던 동료 교수의 안타까운 소식에 김 교수를 포함한 우리대학 구성원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함 교수는 1991년 우리대학 화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미국 텍사스 공과대학에서 4년 6개월만에 이학박사를 취득했다. 아침잠이 많았던 함 교수는 유학시절을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기억했다. “첫 유학 1년 동안 2시간만 잤어요. 영어를 거의 처음부터 배웠는데 랭귀지스쿨을 가지 않고 바로 석사과정을 시작하다보니 수업을 듣기가 힘들었죠. 영어 발음을 녹음해서 친구에게 들려주고 교정받고, 조교로서 강의할 땐 전날 새벽까지 강의자료 준비한 뒤 1시간 반만 자고 수업을 했으니까요. 맨날 울고 다니고 한국 사람들 모임에는 거의 못 나갔어요”

 


 

미국에서 박사후과정으로 자리를 잡던 그는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 돌아왔다. 4개월의 병간호 끝에 아버지가 별세하시자 한국에서 직장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한 함 교수는 고려대 연구교수를 거쳐 2003년 33살의 나이로 모교 화학과 교수에 임용됐다. 생전 인터뷰에서 그는 모교에 교수로 돌아온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숙명에는 저보다 똑똑한 후배들이 참 많은데 그 친구들이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경우를 종종 봤죠. 저도 학교 적응이 힘들었는데 결국 교수가 됐잖아요. 저를 보면서 학생들이 ‘나도 할 수 있다’는 꿈과 비전을 가졌으면 했어요”

 

단백질 연구의 세계적인 전문가인 함 교수는 치매, 당뇨, 암 등 각종 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단백질의 응집현상을 원자 수준에서 규명해 단백질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슈퍼컴퓨터와 열역학을 융합해 독자적으로 고안한 역동 열역학으로 치매를 유발하는 단백질의 응집 기작을 세계 최초로 규명하고, 단백질과 물의 상호작용을 정확히 구현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등 난치병 치료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연구성과로 2014년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과 2016년 4월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을 수상하고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의 대표 연구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함 교수는 2014년부터 미주, 유럽, 동남아, 중동 등 15개국을 다니며 콘퍼런스, 대학, 연구소 등에서 90여 차례 가량 기조강연과 초청강연을 진행했다. 2017년에는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세계적 석학 20여 명을 초청해 숙명여대에서 삼성 Global Research Symposium을 개최했으며 과학계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Gordon Research Conference(GRC)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세상을 바꿀 과학자’라고 불리는 캐나다고등연구원(CIFAR)의 시니어 펠로우에 한국인 최초로 위촉되기도 했다.

 


Gordon Research Conference에 참석한 함시현 교수(앞에서 5번째 줄 왼쪽에서 2번째)

 


CIFAR 프로그램 Director인 Dwayne Miller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소장과 함께

 

“주위에 가까운 지인을 병으로 잃어본 사람은 알아요. 난치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하루도 쉴 수 없어요” 뇌출혈로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난치병 치료를 위한 연구에 매진해 온 함 교수는 지난 25년 간 휴가 한번 제대로 간 적이 없었다. 주말은 물론 연구년에도 매일 연구실에 출근하며 연구과제의 진행사항을 체크하고 국내외 콘퍼런스에 참여했다. 특히 투병 기간에도 진행하는 사업과제를 일일이 챙기고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의 논문지도를 꼼꼼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약 2년 여 간의 암 투병 끝에 지난 1월 16일 향년 53세라는 젊은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함 교수는 평소 모교에 대한 애교심과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국내외 콘퍼런스의 초청강연을 하거나 연구성과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우리대학과 재학생들의 우수한 역량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학생들이 스스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웠다. 해외 대학 여대생들에게는 여성 과학자로서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강조했다.

 


 

화학과 홍승우 학과장은 “바쁜 일정 중에도 제자들과 만나는 학과 행사에는 꼭 참석해 여러 가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며 “학생들에게는 단순한 스승을 넘어 일종의 멋진 언니이자 롤모델이었다”고 회고했다. 같은 과 김병권 교수는 “함 교수님은 언제나 열정적이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놀라운 업적을 남기셨다”며 “교수님이 보여주신 좋은 모습을 후배들이 잘 기억하고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대학은 함 교수의 업적을 기리는 특별명예연구교수상을 수여하고 화학과 홈페이지에 온라인 추모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대한화학회도 함 교수를 추모하는 글을 모아 오는 3월 대한화학회 발행지에 게재한다고 밝혔다.

 

생전 인터뷰에서 함 교수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건 똑똑한 게 아니에요. 성실이에요. 연구는 마라톤 같아서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죠. 두려움을 버리고 자신감을 가지세요. 여러분은 젊다는 것 만으로도 예쁘니까요.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꿈은 이뤄질 거에요”

 

*함시현 교수님 추모 사이트 : https://www.forevermissed.com/sihyun-h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