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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예의 美를 세계에 널리 알리다. 김설 교수(공예과) 인터뷰

  • 조회수 4434
  •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보도일자 2015-10-13

지난 4월 세계적인 디자인 축제인 이탈리아 밀라노 디자인위크에서 한국공예를 소개하는 법고창신 전시회가 열렸다. 한국 공예대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가운데 유독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우리대학 공예과 김 설 교수의 건칠그릇이었다. 본 작품은 전시 기간 내내 관계자들의 호평을 받으며 런던, 프랑스, 일본, 독일 등 전세계 기획사들로부터 전시개최 요청을 받을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이에 한국 전통 옻칠 공예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는 김 교수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한국 공예의 미를 세계에 알리다

 

“작품을 본 많은 외국인들이 맑고 투명한 색감 때문에 깜짝 놀아요. 지구상에 있는 예술 작품 중 이렇게 강렬한 빨간색을 낼 수 있는 것은 옻칠 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 매력에 듬뿍 빠지죠”

작품을 설명하는 김 교수의 눈이 반짝인다. 말투와 손짓에는 옻칠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 느껴졌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한국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전시됐던 밀라노의 ‘법고창신전’에서 그녀의 작품은 단연 화제의 중심이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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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들이 가장 신기하게 생각한 것 중 하나는 모던한 스타일의 그릇이 사실은 아주 전통적인 동양의 기법으로 만들어졌다는 거에요. 마치 유리그릇처럼 세련되어 보이는데 무게는 엄청 가볍고 충격에도 강하니까요” 옻칠예찬은 이어진다. 김 교수는 “옻칠은 정말 귀하고 값진 천연재료에요. 지금껏 인류가 개발한 어떤 화학도료보다 우수한 보존효과를 가지고 있죠. 굳은 이후에 쉽게 떨어지지 않고 산이나 알칼리, 염분에도 부식되지 않는 특유의 방부성과 내열성을 자랑하기 때문에 수 천년 지난 유물도 현재까지 온전히 보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김 설 교수의 옻칠공예는 오랜 기간 우리나라 칠공예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이번 밀라노 전 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국내외 개인전을 통해 세계적 주목을 받아온 것이다. 특히 옻칠예술 선진국인 중국에서는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았다. 한중수교를 맺기도 전인 1991년 중국 공예관의 초청을 받아 현지 공예작품의 수준을 진단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1994년부터 한중 칠예전시 교류전에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2012년까지 객좌교수를 역임했던 청화대학에서는 한국의 대표 발표자로서 한국 현대 칠예술을 소개하기도 했다.

   

서양화가의 딸, 옻칠의 매력에 빠지다.

 

김 교수는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통영 최초의 서양화가인 김용주 화백의 딸이다. 서양화가의 딸이 옻칠공예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아버지는 우리나라의 초기 서양화가 도입되는 시기에 제대로 교육을 받으신 몇 안 되시는 근대서양미술의 개척자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가 워낙 어릴 때 돌아가셔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죠. 물론 직접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알게 모르게 명화와 수준 높은 조각작품을 보고 자랐어요. 특히 그 당시엔 한국에서 보기 힘든 누드화도 많이 보고 그리스 여신의 조각이라던지 그런 것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우리대학 미대 산업공예과를 진학한 김 교수는 세계적인 옻칠예술가인 김성수 교수를 만나게 된다. 현재 통영옻칠미술관의 관장을 맡고 있는 김성수 교수는 이론과 실기를 모두 다루는 조형공부를 한 1세대다. 김설 교수는 김성수 교수의 연구실에서 무려 12년 동안 수석연구원 생활을 하며 옻칠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됐고, 은사의 뒤를 따르게 길을 선택했다. 동아공예대전 공예상,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제4회 대한민국공예대전 대상 등 화려한 수상경력도 뒤따랐다.

 

인내의 미학을 완성하다

 

김 교수는 모시나 삼베를 옻칠과 반복하여 원하는 두께로 바르고 칠을 입히는 협저칠기법으로 작품을 만든다. 특히 점토, 스티로폼 등으로 원하는 속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천을 호칠과 함께 바른 다음 건조하고 연마하는 과정을 반복한 뒤 태(胎)를 떼어내어 완성하는 협저탈태칠기법은 오랜 기다림의 예술기법이다.

undefined따지고 보면 옻칠이라는 장르 자체가 기다림의 연속이다. 옻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나무를 10년가량 키워야 하고 그나마도 한 그루에서 아주 미량만 나오기 때문이다. 옻이 마르는 조건도 독특해서, 사우나처럼 습기 찬 곳에 10시간 가량 두어야 경화가 된다. 그러나 그 기다림의 끝은 달콤하다. 화선지에 스며든 수묵처럼 칠자체가 천에 배어 색 변질이 없고 튼튼하다. 깊고 오묘한 색깔은 이러한 노력의 산물이다.

여기에 우리가 흔히 길거리에 마주치는 나무, 버려진 나뭇가지를 다듬어 오브제로 사용한다. 밀라노 전에 출품된 작품도 김 교수가 효창공원에서 가지치기하고 버려진 나무를 주워 다듬은 뒤 그릇과 조형적으로 배치했다. 죽은 나무가 작가를 만나 다시 태어난 것이다.

미술평론가인 김해성 부산대 교수는 평론에서 “김 설은 숲의 침묵에서 전통 속에 내재한 새로움을 읽어낸다. 그가 전통 공예의 기(器)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 않는 것도 단순한 전승에 머물지 않는 장인 같은 생활의지가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인지 김설의 작품에는 그가 소시적 자랐던 공기가 맑고 맞붙은 하늘과 바다의 빛이 투명한 통영의 공간이 보인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작품에서 보이는 세심함과 생명력은 이같은 예술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칠예공예 선진국도 찾아오는 숙명여대

 

우리나라는 나전칠기로 대표되는 칠기예술의 중심국 중 하나이지만 국가적으로 칠예를 육성하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교육여건과 시설이 부족하다. 김 교수에 따르면 학부와 석박사 과정에서 목칠전공, 칠예교육이 이뤄지는 곳 역시 숙명여대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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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칠예술은 서양에서는 따라할 수 없는 동양만의 차별화된 예술분야에요. 그것의 가치와 경쟁력을 잘 알고 있는 중국과 일본은 국립대학에 칠예전공을 설치하여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지요. 반면 우리의 여건은 그렇지 못합니다.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보존, 계승하려는 사회적 기반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지요. 그런 면에서 민족사학인 숙명에서 칠예술을 교육하고 계승시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것은 참으로 다행입니다”

지원규모나 인력풀은 비교가 안 되지만 우리대학은 뛰어난 칠공예 교육수준을 자랑한다. 1980년대 후반 김성수 교수의 지도 하에 대학 최초로 칠예교육을 시작했던 노하우가 쌓인 결과다. 실제로 지난 2013년에는 중국 청화대와 남경예술대 등 20개가 넘는 대학과 연구소 관계자 30여명이 단체로 우리대학을 찾았다. 여기엔 남경사범대학 미술학원의 우커런 교수, 청화대 미술학원 공예미술계의 바이샤오화 작가, 남경예술대학 설계학원의 리롱칭 부원장 등 칠예분야 저명인사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들은 칠예작업장, 작품전시장, 박물관 등을 관람했으며 특히 우리대학이 갖춘 집진 시스템과 온도 관리 등 칠공예품 교육 여건이 잘 갖춰진 실습현장을 둘러보며 깊은 인상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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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예분야의 전통을 계승하는 숙명이 되어주길”

 

김 교수는 올해부터 내년까지 빽빽한 전시일정을 소화하느라 눈코 뜰 새 없다. 지난 8월에는 2018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을 위한 ‘국제현대미술 교류전’에 황진경 교수와 함께 참가했으며 지난달에는 세계 3대 디자인페스티벌인 런던디자인페스티벌의 텐트런던 한국공예전에 작품을 출품했다. 10월부터 내년 초까지 독일 뮌스터에서 한국현대옻칠예술 특별전에 초대됐으며 이밖에 오는 12월 ‘한국공예의 법고창신’ 귀국전시를 비롯해 각종 국내외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김 교수는 이스라엘, 이탈리아, 프랑스 등 각국 기획사들이 현재 전시개최 요청의사를 타진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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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에서 비주류인 옻칠공예를 묵묵히 계승하며 한국 공예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있는 김 교수가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뭘까.

“지난해 김경아, 황진경 교수와 함께 글로벌탐방단의 일환으로 청화대에 가서 학생들과 수업을 들었어요. 청화대의 경우 공예과 전공 하나가 우리 미대 전체보다 규모가 커요. 사이즈에서 상대가 안 되는 거죠. 그렇지만 우리 숙대는 바로 이 청화대 교수들이 찾아와 작품을 보고 갈 정도로 뛰어난 칠공예 교육역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실력도 월등하고요. 문화는 한번 없어지면 복원하기가 어려운데 그런 점에서 민족사학인 숙명에서 칠예술을 교육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은 참 다행입니다. 앞으로 우리 학생들이 칠예분야의 전통과 역사를 꾸준히 지켜나가고 발전시켰으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