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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숙 동문(약학 74년 졸업)의 몰래 한 숙명 사랑

  • 조회수 5680
  •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보도일자 2012-03-23

 

소리 없는 기부의 날갯짓으로 청파의 불을 밝히는 나비형 인간 

송경숙 동문의 몰래 한 숙명 사랑 

 

전주의 봄은 느리게 오고 있었다. 때 아닌 장대비가 앞을 막고 찬 바람은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벚꽃잎을 어지럽혔다. 이를 대신하듯 늦은 아침에 도착한 전주 ‘새보건약국’에는 치유를 기다리는 아낙들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들 앞에 마치 수업을 준비하는 선생님 같은 초로의 약사, 송경숙 동문(약학, 1974년 졸업)이 맑은 눈빛으로 일행을 반겼다.

 

청보리와 복사꽃이 한창이던 어느 초봄. 동무들과 꽃놀이하던 아이는 ‘신(神)’같은 존재인 조부가 몹시 불쾌한 표정으로 집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일순 긴장했다. 태인향교 전교셨던 조부는 지역 최고 재산세 납부자가 자신보다 형편이 못한 이가 되었다는 소식에 대노하여 세무서에 세금 상향조정을 요청하고 오시는 길이라 했다‘. 한국형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삶으로 실천하는 조부의 자긍심을 보고 자란 아이는 몇십 년 후 몰래 남을 돕는 즐거움과 나눔의 가치를 아는 숙명인으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나눔과 배움의 ‘나비효과’ 

어렵게 마련한 만남이었다. 본인이 좋아서 한 일, 굳이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막상 현재 학교의 발전 소식을 전하니 금세 얼굴 표정이 밝아지며 조금씩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송경숙 동문이 입학한 19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녀는 ‘이사도라 던컨’같은 무용가를 꿈꾸는 소녀였다.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는 그런 딸을 설득해 명문 사학으로 이름난 숙명여대 약학대를 권유했다. 결국 등 떠밀려 입학한 대학 캠퍼스. 그녀에게는 낭만도, 학문적 깊이도 다 남의 일만 같았다. 그런데 뜻밖의 만남으로 그녀의 인생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평생의 멘토이자 귀인(貴人)이 된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이태형 박사의 명강의를 듣게 된 것이다.

 

여성의 권리와 억압된 현실 등 강의 내용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할 정도로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그간 살아온 20년을 송두리째 흔들 만큼 가슴에 뜨거운 감동을 낳았다. 당시는 남녀의 위치와 역할이 분명하던 1970년대 초, 가정폭력과 가부장적인 사회구조에서 억압받는 여성들은 목소리조차낼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분의 말씀이 재학 시절 내내 제 마음을 떠나지 않았어요. 졸업하자마자 이태형 선생님께 간곡히 부탁해 고향 정읍에 지부를 요청, 지금까지 20년째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송경숙 동문의 활동 분야는 그뿐이 아니었다. 전주시 한옥보전위원회와 마약퇴치본부 전북지부 감사, 전북 여성단체연합 후원회장 등 지역 여성과 시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며 ‘정신세계원’ 전북 센터를 직접 운영하고 있었다. 제약회사에 근무하다 결혼 후 개업 한 지 32년째. 그녀는 소문난 약사이자 한약박사로 ‘전국구 약사’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매일 전국 으로 배송되는 한약이 수십 재나 된다.


숙명여대의 미래 청사진에 감동, 즉석에서 1천2백만 원 기증

서울도 아닌 전주에서 맹렬히 활동 중인 송경숙 동문이 발전기금 최초 기부자가 된 데에는 무슨 사연이 숨어 있을 듯했다. “인근에 사는 동문 모임에 나가보니 35명의 선후배가 모여 학교에서 온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어요. 창학 100주년을 앞두고 전국 동문들에게 발전기금 마련 계획을 알리기 위해 나선 첫 지방 모임이라고 했어요.”

제2창학 계획을 자신 있게 펼쳐 보이는 그들의 노력에 가슴이 뭉클해졌고, 1백억원 목표 달성에 대한 청사진도 확고해보였다.

 

“보통 일이 아니겠구나. ‘1백억이면 엄청난 금액인데 나라도 힘을 보태야겠다.’미래의 내 딸들이 다닐 학교를 위한 것이라 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1천2백만 원을 약정했지요.” 그녀의 기부는 거기가 시작점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송경숙 동문은 망설임 없이 기부를 펼쳤다. 약학대학 실험·실습기기 마련, 약대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 등 마음이 동하는 대로 틈틈이, 또 소리 없이 기부했다. 발전협력팀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금액만도 7천여 만 원이 되었다.

 

“제가 여러 단체에서 역할을 맡고 있는 건 모두 숙명여대가 저에게 준 선물입니다. 남편이 시부모님과 2남2녀의 자녀를 두고 홀로 4년간 유학길에 올랐을 때도 혼자서 흔들림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던 것 역시 학교에서 ‘여성 스스로의 힘’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학교에서 몰래 숨어서 봉사하는 것과 소리 없는 기부를 배웠다고 말했다. 그래서 여성 단체 행사 외에는 절대 외부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게 옳다고.

 

“물질은 어느 선까지는 중요합니다만 너무 집착해서는 안 돼요. 아름다움의 가치도 남보다 한발 앞서 가져보세요. 모두가 외모에 치중한다면 본인은 남다르게 내면을 먼저 가꾸고 내면을 볼 줄 아는 남성을 만나세요. 정신 수련도 역시 식(識)을 많이 가진 분들의 깊이가 더 깊습니다.”

 

‘나비효과’를 믿고 ‘경제와 나눔의 기부’를 삶에서 실천하고 있는 송경숙 동문. 학교와 후배들을 위한 송경숙 동문의 소리 없는 날갯짓은 이후로도 쭉 계속될 것이다.

 

 

발췌 : 새힘숙명 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