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자대학교

사이트맵 열기

사이트맵

 
모바일메뉴열기 모바일메뉴 닫기

SM뉴스

PEOPLE

삶의 끝에서 퍼 올린 희망의 두레박

  • 조회수 4916
  • 작성자 커뮤니케이션팀
  • 보도일자 2012-03-26

삶의 끝에서 퍼 올린 희망의 두레박
 

2011년 2월 7일 우리 대학 약학대학에 반가운 동문이 찾아왔습니다. 1964년 졸업식장을 나선 이후 47년간 누구보다 열심히 일생을 보낸 뒤 딸들과 함께 모교를 찾은 손판술(약학, 1964년 졸업) 동문입니다. 이날 후배들을 위해 1억을 쾌척하신 손 동문의 가슴속 깊이 메아리가 되었을 감동을 네 딸들에게 보내는 편지글에 담아봅니다.

 

 

 

 


밀양으로 날아온 숙명여대 합격 통지서. 그날은 바로 내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그대로 하늘을 날고 싶었다. 아니, 너무 기뻐 펄쩍펄쩍 뛰다 보니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의 감동은 내가 꼭 간직하고 떠나고 싶은 이 생애 최초이자 마지막 선물이었다.



늘 보고 싶고 그리운 내 딸들아

몇 번을 곱씹어 회상해도 지루하지 않은 나의 신입생 시절이 떠오른다.

4녀 중 막내인 나는 숙명여대 신입생이 되어 언니들의 부러움과 축하를 한 몸에 받으며 상경했었다. 평생 내 삶의 길잡이이자 동반자였던 셋째 언니는 아홉 살 아래 동생인 내가 서울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친딸처럼 보살펴주었는데, 예나 지금이나 그 언니는 위인전의 주인공보다 더 멋진 나의 멘토였단다.


이번에 (모교에) 기부를 결심했을 때도 가장 먼저 반기며 잘했다고 칭찬해준 사람 역시 바로 그 셋째 언니였다는거 너희들도 알고 있지? 그 언니가 먼저 평생 교수로 재직한 학교의 제자들과 후배들을 위해 기부하는 모습을 보면서‘나도 언젠가는 언니처럼 모교의 후배들을 위해 큰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실행에 옮기고 나니 무척 뿌듯하다. 좀 더 일찍 이런 생각을 하고더 나누고 갈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을 만큼.

 

 

고맙고 또 고마운 내 딸들아

내가 너무 일만 한다고, 가끔 좋은 옷도 사 입고 구경도 다니라며 잔소리했던 우리 큰딸 태희. 자신을 위해 한 푼도 쓸 줄 모르는 억순이 엄마라며 뾰루퉁했던 막내 영선이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러나 내 딸들아. 너희가 모르는 게 있단다. 나에게는 일만큼 즐거운 것이 없었어.

 

내겐 매일 아침 약국에 출근해 마시는 차 한 잔이, 별 일 아니어도 빠른 걸음이 익숙해 서둘러 약국 앞을 지나쳐 가는 부산 사람들의 억척스러움도, 매일 찾아와 피로 회복제 한 병 마시고는 몇 시간씩 며느리 자랑이며 남편 투정까지 털어놓고 가는 이웃집 어른들까지 소중한 내 인생의 벗이자 낙이었다. 그 즐거움에 취해 하루가, 한 해가, 십 년이 가는 줄 몰랐고 너희들이 커가는 것을 큰 보람으로 여기며 살았지.
 

누가 나에게 태어나 자란 고향 밀양과 너희들을 낳고 키운 광주, 그리고 맨 처음 약국 문을 열었던 부산 중 가장 좋았던 시절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부산이 라고 말할 거란다. 만약 내게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다시 주어진다면 두말없이 부산으로 달려 내려가 약국을 지키고 싶구나. 그만큼 내게는 약국이 삶의 터전이자 곧 행복을 퍼 담는 우물이었던 셈이지. 이런 엄마 마음, 이해할 수 있겠니?

다만 내 행복 곁에 나쁜 종양이 서서히 자라고 있음을 가볍게 여긴 것이 결국 이렇게 너희와 빠른 이별을 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깝구나




자랑스러운 내 딸들아

나는 너희들과 미래를 책임질 우리 학생들이 부디 진리가 살아 숨 쉬고 누구에게나 가능성이 열린 건전한 사회에서 성장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 그런 사회의 일원이 되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는 삶을 살도록 항상 노력해야 한단다. 타인과 가족 그리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그런 멋진 여성 말이야.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에서 나눔의 기회를 갖고 모범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몇 안 되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행운일 수도 있단다. 그래서일까? 그 뜻을 이룬 지금 나는, 행복하다….

늘, 영원히 사랑한다, 내 딸들아.


숙명 후배들의 미래와 내 딸들의 행복을 기원하며

손판술

 

 

 

 

발췌 : 새힘숙명 3호

 

故손판술 동문님은 위암으로 투병 중 2011년 2월 27일 별세하셨으며, 숙명여대에는 '손판술 약학도서관'으로 학교를 향한 그의 높은 뜻을 기리고 있다.